사랑이신 하느님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오늘 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신비를 묵상합니다.
성삼위의 호칭은 전례의 중심이며 정점입니다. 우리는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에
성삼위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치며, 모든 전례와 우리의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곧 하느님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은 구약에서부터 계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 탈출기에서도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하느님을 계시한 모든 말씀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와 은총의 하느님,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하느님의 모습은 구약에서 수백 년 동안 계시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더욱 명확히 계시해 주셨습니다.
신약과 구약의 계시가 완성되었을 때, 요한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요한1서 4,8)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은 그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그 본질이 사랑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내면적으로 볼 때 삼위일체를 나타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의 친교를 통하여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랑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신비는 우선 하느님의 내밀한 신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내면적인 모습은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외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구약은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계시합니다.
신약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오, 인간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계시합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강림을 통하여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자이시오, 위로자 이신 성령의 모습을 계시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천상적인 새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 됨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은 우리에게 일치와 생명의 은총을 주시는 사랑의 원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은총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갖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본 모습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삼위일체의 모습대로 창조된(창세기1,26-27참조) 우리 인간은
하느님처럼 그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완성은 얼마나 사랑을 지니고 사랑을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삼위일체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에,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행복하고,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남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입니다.
성숙된 인간인지 아니면 미숙아, 즉 어린이 인지의 구별도 남을 얼마나 배려할 줄 아느냐에,
즉 얼마나 남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구별된다. 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사랑을 진실로 실천할 때 성숙된 인간이 되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니는 인간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17.11) 라고
수난하시 전에 기도하셨듯이 성삼위의 신비를 실현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며 우리 인간의 완성인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는 신비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므로 체험할 수 있는 신비인 것입니다.
혼인미사 때마다 봉독되는 복음에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을 서약으로 맺어진 부부가 사랑을 성실하게 실천하므로 진정 서로 사랑할 때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 신비가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을 실천하여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셨던 사랑을 일치를 이루도록 진정한 사랑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의 특성은 ;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나보다 더 사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자신을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고 구원의 완성에로 나가는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무한히 사랑하고 사랑받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즉 삼위일체 신비를 실천하는 삶이 자신을 완성하는 삶이며, 구원을 완성하는 삶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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