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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월 2일에

이웅수 2008. 9. 19. 18:01

 

이탈리아는 오늘 국경일입니다. 1946년 제 2차 세계 대전을 끝나고 나서 왕정체제와 공화정 체제를 놓고 투표를 6월 2일과 3일 이틀간 하였고, 그 결과 약 1200만 표 대 1000만 표로 200만표의 차이로 왕정이 끝나고 공화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후 62년간 54번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즉, 임기가 보장이 되어 있어도 국민들이 반대하면 양원의 신임 투표와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정권 교체를 하여 왔습니다. 이런 정치 형태의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별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정권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정치권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정권이라고 이야기할 때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이 권력의 형성 과정과 원리를 생각하면 통치라른 기능 외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권력이든지 그 권력은 관계성 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권력을 지닌 주체가 있고 권력을 사용할 대상 (인간이건 물질이건 제도이건)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이 정권의 근원입니다. 국민들은 정권을 "맡기는" 즉 "위임"하는 행위를 선거를 통해서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선거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 사람들은 "위임을 받은 사람들"일 따름이지 그가 스스로 권력의 주체는 아닙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정치적인 차원에서 늘 탄력성과 모호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누구라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 권력의 관계성이 근본적인 관계이기에, 이 관계를 희석하고 변질시키는 것은 헌법 정신에 벗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권력은 중요한 역량을 가집니다. 그것은 제도와 기구를 통해서 공동의 선익이나 목적을 구현할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바로 제도와 기구를 만들고, 그것을 법에 맞게 실행하여 그 국가의 공동 목적에 부합한 결과를 얻어낼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는 국가가 담지한 공공 목적은 "공동선"이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그 공동선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전 세계적인 공동선입니다. 각국이 이 공동선을 추국하고의 여부는 차치하고, 우리나라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그것에 따른 국가의 권력 사용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의 아름다움이며 덕행은 "봉사"입니다. 그것은 군림하지 않으며 섬긴다는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는 차원 정도의 것입니다. 봉사를 하면서도 국가와 국민이 지향하는 공동의 목적 (반드시 선해야 합니다!!!)을 성취해 나가는 정부야말로 요순이 모범을 보인 있으면서도 없는듯이 실천하는 참 봉사의 정부이고 "덕행"의 정부일 것입니다. 바로 정치 권력은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었을 때 비로소 "상식적인 차원에서" 국민이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는 정권이 될 것입니다.

 

2. 왜 정치 권력이 필요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인간 본성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근본 질문에서 시작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라는 윤리적인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윤리가 가장 성숙한 학문 중의 학문이라는 점에 도달하면서, 이 윤리가 최대한 보장됨으로 나 자신이 가장 극대화하여 구현될 수 있는 장소를 시민 사회로 규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시민 사회에서는 나의 완성과 사회의 완성이 이루어지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이고 인문적인 인프라를 교육과 헌법 그리고 다양한 규범들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이 이런 지성적인 정의는 사회가 어떤 "이상"에 전체적으로 동의하고 있을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반면에 홉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정의를 통해, 인간 관계의 불확실성 때문에 정권의 필요성, 인간 상호 간의 투쟁의 중재 역할로서의 정권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홉스가 살던 시대와 장소는, 잘 아시듯이 17세기의 영국으로 팽창주의와 중상주의로 인한 전쟁과 약탈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자본주의가 사회적으로 생성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의 나라에서 자본주의를 극대화시킨 산업혁명이 그의 사후 100년 뒤에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국가의 기능은 통제와 간섭으로, 최대한 자연법적 정신에 입각하여 인간과 사물을 조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계약"으로 이를 통해 인간과 재화에 대한 권리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마르크스는 잘 아시는 자본과 노동과의 관게를 분석하면서, 정권은 계급을 공고히 하고 억압을 위한 도구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권력은 왜 생겨났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모델을 정신적으로 따를까 생각을 합니다. 말씀드린 세 가지 모델 중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것은 없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말들이라서 써 보았습니다.

 

3. 그렇다면 정권이 가지는 한계는 어디입니까? 막스 베버라는 독일의 대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의 목적에는 한계가 없으나, 그의 특성은 목적을 추구하는 그의 방법에서 표현된다, 그것은 그가 가진 힘이다". 정권의 한계는 이 말에 의하면 그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미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즉, 그의 목적과 그의 방법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한계를 밝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정권이 추구하는 목적은 정권이라는 주체에 대한 대상입니다. 이 대상은 그 자체가 이미 선이거나 악일 수 있습니다. 정권이 추구할 목적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위 그리고 공공질서의 안정을 기본으로 한 "번영"입니다. 이것이 첫 한계입니다. 정권의 목적은 당연히 인간이 가진 고유한 자연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연권 (natural rights)가 또한 정권의 한계입니다. 자연권의 가장 기본적 권리는 생명권과 생존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만약 정부와 상관없는 어떤 국민 단체가 "선익"을 형성할 때 그것을 절대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번째 한계입니다.

반면에 방법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공권력"의 한계는 폭력의 사용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정권이 폭력을 사용할 때에는 그 사용 이유가 국가 정체성과 (정권보호가 아닌!!!) 목적에 부합한 경우에만, 신체적 자연권이 손상되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4. 몇 가지 저의 생각입니다.

1) 대한민국은 작년의 대통령 선거와 올해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었고, 그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소위 "우익"의 급부상은 "좌익"의 몰락과 비견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승리감과 함께 정치와 경제에서의 인간화와 성장을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선된 사람들 모두 그런 비전을 가지고 공직을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 알고 있는 수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고, 국민들이 거리에서 밤샘 시위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고 사법처리까지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정권의 비도덕성이나 무능함 혹은 양극화를 인정하는 자본주의로의 극단적 회귀를 지향하는 정책의 비인간성, 사대주의, 철저한 유물론적 시장 경제주의, 고질적인 집권자들의 교만이나 국민들의 삶에 대해 "통치자"로 군림하는 행태들이 아닙니다. 이런 부분들은 정말 우리 모두의 혈압을 오르게 하고 밤잠을 못이루게 하는 일이지만, 저의 첫 생각은 우리 국민들이 표를 던지는 시점에서 이런 일들을 예상했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제가 외국에 있지만, 저와 대화를 잘 나누는 다른 신부님들과는 이미 대통령 선거 이전에 예견하며 불안했던 일들이 이런 것들인데,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선거 이전에 이런 염려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면서도 표를 던졌다면, 우리 국민들이 가졌던 "희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위임"을 하는 시스템이건 "통치에 복종"을 하는 시스템이건 이미 권력은 이양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필요하면 그 권력을 취소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그랬습니다.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약점이 우중정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플라톤이 역설한 바 있습니다. 가장 이성적인 국민인 독일국민들은 "합법적으로" 히틀러를 국가 수장으로 뽑았고, 그러므로 20세기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학살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말 그 국가가 스스로의 이념이나 정체성에 올바른 비전을 갖지 못한다면, 국가는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제가 알기로 국민들은 경제를 살린다는 말에 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OECD국가입니다. 국가 지니고 있는 재화가 적은 나라가 아닙니다. 참고로 전 정부가 죽도록 모아서 현 정부가 환율을 위해 마구 풀 외환보유고만 해도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듭니다. 국내 경기의 문제의 핵심에는 재화가 공적 시장에서 운용되지 않고 회전하지 않아서 입니다. 재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재투자가 소비재로 이어진 "이기적인" 경제 운용을 "재화 보유자"들이 한 것입니다. 결국 돈이 묶였던 것이 시장을 죽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국민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기적인 욕심으로 투표에 참여하였고,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투표한 것이 그 결과입니다.

그런데 저의 근본 질문입니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예언직을 수행하라는 사명을 받았는데,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을 하였습니까? 저의 결론은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자로 자족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2) 촛불을 들까요?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회개가 더 중요합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감수성으로 세상을 보고 구원을 위해 아파하는 것이 중점입니다. 따라서 다시 성경을 읽고 다시 토의하고 다시 세상에 대해 공부를 하는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직자들은 반드시 사치스런 삶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지만, 더욱 박차를 가할 부분이 있습니다.

3) 교회는 세상에 대해 빛과 소금입니다.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하는 존재입니다. 솔직히 욕심으로는 한 번 기업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메카니즘에 따라 자본주의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고, 일하는 사람들도 직장을 제공함으로 먹여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경제 구조에 대한 공부는 너무 절실합니다.

 

오늘은 더 쓰기 힘드네요. 괴로운 날입니다. 쿠키뉴스의 장면들을 보면서 눈물을 엄청 흘린 날입니다.

출처 : 가톨릭사회교리공부-회개, 식별, 행동
글쓴이 : aletheiajy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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