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9/17 연중 제24주일(가)

이웅수 2017. 9. 16. 22:40

        용서는 위대한 사랑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는 집회서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을 생각하며 용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많은 강대국들로부터 오랫동안 박해와 고난을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일어서고 재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압제자들을 용서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다른 민족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지혜입니다.

실제로, 미움과 복수는 악순환만 계속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유대인들도 용서로써 탁탁 털고 일어서기를 강조한 것입니다.
용서는 굴욕적인 것 같으나 위대한 것입니다. 용서는 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참되게 용서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진정 용서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에 대한 말씀이 비유로서 잘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1만 달란트의 돈을 빚지게 되었습니다.
1만 달란트의 돈은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훨씬 넘는 돈으로서 서민들은 평생 벌어도 벌수가 없고
평생 갚아도 갚을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러나 왕은 그 사람의 불쌍한 처지를 생각하여 빚을 다 탕감해 줍니다.
왕은 바보처럼 한 푼도 건지지 않고 전액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용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돈을 탕감 받은 사람은 나오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자
그걸 탕감해 주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감옥에 넣어 버립니다.

100데나리온은 지금 돈으로 2백만 원쯤 됩니다.
2백만 원이 큰돈이긴 하지만 자기가 탕감 받은 1조원 이상의 돈에 비하면

60만분의 일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돈입니다.
다시 말해 눈꼽만한 잘못도 결코 잊지 않고 따져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용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합니다.

남의 잘못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용서를 못하는 자신의 옹졸함 때문에 불행합니다.

어떤 자매가 어렸을 때가 자기 계모한테 많은 구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도 좋고 아버지의 경제력도 좋아서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습니다.
시집도 병원을 가진 의사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의사이면서도 자신의 얼굴에 돋아 있는 피부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원인도 병명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령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오랫동안 잊어 왔던 계모를 증오해 왔음을 크게 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는 병이 나아 버렸습니다.
학자들의 주장으로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두통, 불면증, 고혈압, 위장장애,
신경성 질환, 또는 정신질환 등이 생긴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도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가슴에 독한 쓰레기를 담고 있는 사람이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 더러운 것을 꺼내지 않으면 바로 그 찌꺼기 때문에

육신이 병들고 정신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용서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죽어야 하는 처절한 아픔이 있습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는 절대로 상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 없이는 증오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죄 많은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당신이 직접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죽어서 용서가 되면 그는 평생 자유로운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면 그는 평생을 끌려 다니면서 천번 만번 죽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인생도 없습니다.
미움은 세상 끝까지 인간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까지 따라가서 괴롭힙니다.

참 사랑은 용서에서 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애긍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가 진정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아직 사랑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우리가 마지막 심판 때에 하느님께 매달릴 자비와
용서에 비한다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1조 원과 2백만 원의 차이보다도 더 큽니다.
인생은 아무리 잘못되었다 해도 용서받고 용서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썩은 찌꺼기를 깨끗이 씻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럽고 또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인생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지식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 때 그가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이 됩니다.
누가 여러분을 괴롭힙니까?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합시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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