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1/28 연중 제4주일(나)

이웅수 2018. 1. 27. 22:36

         삽시간에 퍼진 예수의 소문
      
오늘은 연중 제4주일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구약의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신약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나라의 체험을 그대로 전하셨기에 권위가 있었고 힘이 있었으며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신명기의 말씀은 예언자의 기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발현하시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모세와 같은 하느님의 사자, 하느님의 대변인을 통해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간택하시고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언자의 효시가 됩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말하라고 시키시는 내용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예언자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 실천해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가파르나움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대중들에게 설교하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대단히 권위가 있고

그리고 이해가 쉽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느님 나라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놀라고 감탄했으며 특히 그분의 말씀 한마디에 악령이 무서워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들이 탄복을 했고 그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레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권위 있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옛날 율법학자들은 성서에 대해서 많은 지식과 훌륭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율법학자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학자들의 권위가 쇠퇴하게 됩니다.
도대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은혜와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과 두려움과 그리고 속박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말씀을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목소리만 높였고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 축소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에서 외면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생전 느껴보 지 못했던 하느님의 사랑이 넘쳐흘렀고
복잡하고 막연하기만 했던 하느님의 율법 안에서 그들은 하느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며
또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진정 위대한 스승이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이론이나 전통에 묶여져 있지도 않았으며

왜곡된 내용을 쓸데없이 고집하지도 않았습니다.
막연하고 애매한 것은 직접 예화를 들어 설명해 주셨으며 말씀의 참뜻이 무엇이며
거기에 어떤 힘과 사랑이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었으며 또 한 그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의 교수법이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께서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언행의 일치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악령 보고 '나가라.' 하시자 악령 이 혼쭐이 나서 도망쳤습니다. 이런 일은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성직자들에게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이 '언행의 일치'입니다.

아무리 강론을 잘하고 아무리 사목을 잘해도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으면

그는 권위를 잃게 됩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셨다는 말씀을 묵상하며, 참지도자가 어떤 사람일까? 를 생각해 봅니다.
참 지도자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근면하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솔선수범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리함이 아니고 순수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요새 똑똑하다는 사람 많은데, 머리를 잘못 써 남을 속이고 기발하게 머리를 굴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은 참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실하게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참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참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믿어주고 인정하며 애정을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삶의 자세가 참 신앙인의 자세 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이시기에

우리 인간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기적을 행하시는 동기가 병자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이었고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과 애정 때문에

그들을 돕고 그들 편이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고 삽시간에 예수님에 관 소문이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삽시간에 퍼진 예수님의 소문은 없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그렇게 전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 안에 그리고 이웃에 예수님의 소문은 삽시간에 사회를 밝힐 것입니다.
참 신앙인으로 신앙인답게 살도록 합시다. 거기에 사랑의 권위가 있습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