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오늘은 연중 제6주일이며 세계의 병자의 날입니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공통된 가르침중의 하나는 나병을 죄악시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나병을 죄와 잘못의 결과로 이해했습니다.
성서는 모든 질병 특히 나병을 죄악과 동일시했습니다.
이것은 질병이 주는 부정적인 현상을 생각하며 죄악의 흉함을 깨닫고
늘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살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깨끗이 낫게 하십니다.
나병환자의 심리적 고통과 갈등을 우리는 이루 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나환자는 실망과 좌절의 대명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청할 때 깨끗이 낫게 하십니다.’
“나병은 실로 무서운 병입니다.
옛날엔 한번 걸렸다 하면 그 시간부터 완전히 죽은 인생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눈은 흘기게 되고 입은 비뚤어지며 목소리는 쇳소리를 내게 되고 눈썹이 빠지며
손가락 발가락들이 오그라들고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얼굴에 돌기가 생겨서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징그러운 사람이 됩니다.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것이 나병에 걸린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하느님께로부터 벌 받은 상처'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나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과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진지밖에 자리 잡고 따로 살아야 했으며 혹시라도 건강한 사람이 잘못 접근하게 되면
자기는 '부정한 사람이오.'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병을 경고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맞아 죽어야 합니다.
부모와 가족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외롭고도 불행한 사람이 바로 나병환자였습니다.
제가 신부가 되어 첫 번째로 부임한 본당에 30호되는 음성나환자촌이 있었습니다.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아 오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움막을 치고 구걸하여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이 그들을 천대하고 멸시하기에
그들은 건강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걸하다가 쌀을 조금주거나 말이 곱지 않을 때는
벽에 손가락을 긁어 피를 나게 하여 피를 뿌리곤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 지역사회에 골치 아픈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의 대표와 대부분이 신자였습니다.
제가 부임하여 이 마을 가정방문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식사문제의 어려움이 있다고 총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기에
그 마을 대표의 집에서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고집을 부려 대표의 집에서 식사 준비를 했고, 가정방문을 하며 일일이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손가락이 없는 조막손이거나 손가락이 굽어진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함께 갔던 회장님들은 식사를 못했지만 저는 밥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들은 순한 양이 되었고, 저는 여러 곳의 은인들의 도움으로 집터를(산 3000평) 샀고, 살집을 지었고, 집집마다 짐승을 기르도록 했고, 논밭을 사서 공동경작을 했고,
그래서 생활이 궁색하기는 했지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본당을 떠나든 날 그 마을 모든 사람들이 본당에 나와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대표였던 고 스테파노씨는 만연필을 선물로 주면서
“신부님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매년 성탄 때마다 친필로 써서 만든 카드를 보내오곤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신 것은 치유 그 자체를 넘어서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간주되었던 그들에게 높은 인격의 가치를 부여해 주신 것이며
또한 어떤 인생도 예수님 앞에서 치유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우리 모두가 본받기를 그분은 은연중에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환자에게 손을 갖다 댄다는 것은 같이 부정 타는 일인데도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세상에는 나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죄를 모르고 속에는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인생들입니다.
그들은 속은 썩었어도 겉은 멀쩡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병자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평생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옛날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도 그런 모습의 사람은 아닌가요?
오늘 나환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자기 병을 낮게 해 주시기를 간청하므로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 곁으로 달려오기를 항상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잘못에 대해 늘 측은한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용기 있게 나아갑시다. 그 분만이 진정 우리를 고쳐 주시며 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저를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마르 1,4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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