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원천이요 부활이신 예수님
오늘은 사순 제5주일입니다.
전에는 고난주일이라고 했고,
예수님의 수난을 더욱 깊이 묵상케 하기 위해 성상을 자색보로 가렸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생명의 회복 즉 부활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원천이시요, 생명수 자체이심을 묵상했고,
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생명이요, 부활이심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을 살 때, 사랑을 실천할 때, 무덤에서 나와 부활의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외치셨습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무덤에서 이미 악취가 풍기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오라 명령하십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꼭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무덤에 묻힐 때 시신이 꽁꽁 묶어 무덤에 안장합니다.
무덤입구는 그 당시 큰 돌로 막았습니다. 라자로가 꽁꽁 묶여 있었고
큰 돌로 입구를 막은 그 무덤을 향하여 라자로에게 “라자로야 나오너라.”고 소리치십니다.
무덤! 우리를 묶어 놓고 악취를 풍기게 하는 나의 무덤은 무엇일까요?
“제 무덤을 제가 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덤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이 대부분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증장애인들을 수용하는 교회 어느 복지시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형제님이 루게릭병에 걸려 몸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겪는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습니다.
죽으려 했지만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 없으니 마음먹은 대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무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팔다리를 좀 쓰게 해 달라고,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기적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서는 혀가 굳어져서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보기에 너무 딱해 그에게 작은 컴퓨터를 한 대 사주었고,
입에 연필을 물고 자판의 글자를 처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늘 컴퓨터가 친구가 되어 글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내용이 하느님을 원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낸 다음 시를 써 알려지게 되었고, 신문에 이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기도를 제가 원하는 대로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때는 죽고 싶었습니다. 저는 살아 있지만 무덤 속에 묻혀있는 죽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제가 가지지 않은 것을 탓하고 싶지 않아요.
없는 것을 탓하고 불평하면서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탓하고 불평하면서 산다고 제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
없는 것을 탓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움직일 수 있고,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너무 놀랐어요.
하느님께서 제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신 줄 알았는데
하느님께서 저를 위해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남겨주셨음을 발견했어요.
‘탓하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사랑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하느님께 감사드렸어요. 그래서 스스로 판 무덤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
제가 무덤에서 나와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은
‘할 수 없는 것을 탓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알았어요. 저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라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위의 글을 쓴 형제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분들이 아닌가요?
온몸이 굳어져 사용할 수 없고 목과 입만 사용할 수 있어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차로 꽉 메워진 길, 시간은 급한데 차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이때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적을 울리며, 차창을 열고 고함을 지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며
짜증스러워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급해도 여유 있게 음악을 듣거나,
동승한 사람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유용이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평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그 시간은 무덤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경우 그 시간은 새로운 창조이며,
부활을 사는 시간입니다.
경적을 울린다고, 욕설을 퍼붓는 다고 막힌 길이 뚫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시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불평하기보다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은 무덤에서 나오는 것이며,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불평하고 남을 탓하는 삶, 무덤처럼 답답해하고 짜증스러워하는 것은
대부분 없는 것을 탓하고 불평하는 데에 기인합니다.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라 말씀하시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자로야 무덤에서 나오너라.” 명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마음속에 깊이 새깁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판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세속과 죄에 죽고 주님의 참된 자녀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무덤에서 라자로처럼 부활해야 합니다.
어떤 자매님이 사순시기가 얼마 지난 다음
“뭘 주저하고 있느냐, 빨리 나오너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자매는 몇 달 동안 쉬고 있었습니다.
성당에 나와 판공성사를 보고 매일 미사에 나오기로 결심하고,매일 미사에 참여하며
마음의 평화 기쁨을 되찾았다고 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한 느낌일 것입니다.
부활축일까지 두 주간 남았습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 무덤에서 나와 부활하는 시기입니다.
스스로 판 무덤에서 해방되어 부활의 기쁨을 살도록 합시다.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고 생명이시요, 부활이신 주님을 우리 안에 우리 가정에 모실 때
부활의 기쁨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십니다.
내가 스스로 판 무덤이 무엇인지 잠시 자신을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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