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4/8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이웅수 2017. 4. 7. 23:16

      파스카 신비

평소에 남을 못 믿는 의심 많은 사장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책상 위에 있어야 할 만년필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 사장님은 자신의 여직원이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며 아주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여직원은 자신이 절대로 훔쳐가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장님은 이 방에 들어올 사람은

자신과 여직원밖에 없다면서 따라서 여직원이 분명히 훔쳐간 것이라며 혼을 내는 것입니다.
이에 여직원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잃어버렸던 만년필이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사장님은 너무나도 미안해서 여직원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직원은 손을 내 저으며 이렇게 대꾸하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사장님은 저를 도둑으로 잘못 보셨고,

저는 사장님을 신사로 잘못 봤으니 피장파장이네요.”

사실 억울함을 경험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 억울함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는지요?
혼자 분을 참지 못해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사람들, 또 자신에게 억울함을 준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면서 분노의 칼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한들 손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도 부정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앞선 그 여직원과 같은 지혜로움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손해를 보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억울한 일을 경험하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함에 의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 중의 하나인 카야파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바로 아무런 죄도 없는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이렇게 희생양의 위치에 서게 될 때가 종종 생깁니다.

즉, 억울한 일을 경험하는 그때가 희생양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너무나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원수를 만들고 자신을 학대하는 행동은 피해야 합니다.
대신 바로 이 순간 우리가 떠올려야 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
따라서 나 역시 그러한 억울한 경험을 통해 예수님의 삶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이 부활로 연결되듯이, 우리 역시 기쁨의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즉 버림받으신 예수님이 되어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도 참 많이 경험하게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살 만한 세상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버린 받으신 예수님을 살 때 부활의 기쁨을 체험 할 것입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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