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9/9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이웅수 2017. 9. 8. 21:48

           긍정적인 사람

  미국의 한 연구팀은 사진속의 인물들이 커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 지 조사했답니다.
즉, 어린 시절 사진 찍을 때마다 크게 웃는 사람과 찡그리고 있는 사람의 이혼율을 조사한 것입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찡그렸던 사람이 크게 웃는 사람보다 이혼율이 자그마치 세 배나 높았습니다.
잘 웃는 사람은 대부분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이를 잘 해결하고,
자신처럼 명랑한 성격의 배우자를 만나서 싸울 일이 적다고 합니다.
반면에 찡그리고 있는 사람은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져서

부부 사이의 갈등을 잘 풀어나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거리를 거닐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웃음이 없다는 것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 외에 웃을 수 있는 동물이 없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웃지 않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백번의 신음소리보다

한 번의 웃음소리가 훨씬 더 듣기 좋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앞선 연구에서도 나왔듯이 더 잘 웃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이며, 더 큰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웃지 못하는 것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뀔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부정적인 마음이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어제 복음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에 관해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는 이유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인데,

그들은 안식일 법을 확대 해석해서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의 바리사이들의 얼굴 표정을 떠올려보십시오.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화난 표정을 만들고,

이 화난 표정은 하느님의 축복을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금 내가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때의 내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이 얼굴을 하느님께서 보신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 지를 떠올려보십시오.
가뜩이나 인상이 좋지 않다면 더욱 더 웃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꾸짖는데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 그 말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남에게 착한 일 가르치기를 너무 높은 것으로써 하지 말라.

그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한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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