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11/5 연중 제31주일(가)

이웅수 2017. 11. 5. 00:31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

오늘은 연중 제31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오늘 본기도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높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자신을 나추는 사람은 높아 질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채근담에 서화시아사(書畵是雅事) 일탐치변성상고(一貪癡便成商賈) 즉 “그림과 글씨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일단 탐욕과 어리석음에 얽매이면 장사꾼이 된다.”는 말입니다.
화가나 서예가들은 이 말의 뜻을 잘 알아들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걸작을 내는 예술가들도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에

손가락질 받는 장사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신심행위나 선행도 이 같은 법칙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행위의 이면에 탐욕과 허영심이 있다면 어떤 신심행위와 선행도
위선적인 행위로 전락해 버릴 수 있음을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되묻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는 위선적인 면이 전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예수님께서 싫어하시는 위선적인 즉 “체”하는 때가 많이 있지요?
즉 우리는 모두 겉과 속이 조금씩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조금씩은 위선자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두 가지 “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이고,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나”입니다.
불교에서는 내 속에 있는 나를 진아(眞我)라고 합니다.
우리는 내 속에 있는 나보다 남에게 보이는 나에게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는 “체”하는 것이 통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한 어릿광대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위하여 쇼를 하고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엄숙하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릿광대는 그 사람들을 보고 기가 죽었습니다.
모두 거룩한 얼굴에 기품이 있는 옷차림을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을 보니 초라하기 짝이 없었었습니다.
얼굴에는 어릿광대의 분칠을 하고 코에는 삐에로의 빨간 코를 붙이고 볼에는 빨간 점을 찍고
우수광스럽고 바보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신자들이 다 가고 성당 불이 꺼지자 어릿광대는 성당에 들어가  제대 앞에서 기도합니다.
“하느님 죄인이 왔습니다. 제가 당신께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수광스러운 어릿광대춤뿐입니다.” 그리고서는 그 춤을 추었습니다.
성당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성당 관리인이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어 어릿광대와 함께 춤을 추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솔직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원한다면;
거울 앞에서 1분, 영혼 앞에서는 5분 하느님 앞에서는 15분을” 우리는 그 반대가 아닌지요?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는 나’에게 충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희랍의 알렉산더대왕이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 철학자는 강둑에서 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호화로운 장신구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고 온 알렉산더대왕이 그 철학자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소. 그대와 나를 비교해 보면 볼수록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낀다오.
그대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소. 그런데 그대는 나보다 훨씬 자유롭고 부유해 보이니 웬일이요?
그대의 그 부유함은 어디에서 오 는 것이오?” 디오게네스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오. 무욕이 나의 보물이요.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서 내가 내 주인이 되었소. 그리고 세계를 정복했소.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정복했기 때문이요.
(여기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 승리자’라는 말이 나왔음)
나의 승리는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지만 당신의 승리는 죽음이 앗아갈 것이오.
죽음이 앗아갈 것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겠소?”

여러분은 어디에 목숨을 겁니까? 보여 지지 않는‘나’입니까? 내 속의‘나’입니까?
우리 신앙인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을 의식해야 합니다.
특히 봉사로 불림을 받은 여러분은 더욱 겸손한 삶을 살아야하며
주님의 봉사자로 이웃의 종이 되어 주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