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의 잣대는 사랑 ----- 다시 쓰세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성덕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정통했던,
그리고 하느님은 물론 이웃을 사랑했던 분들은 예언자들이요 성인들입니다.
오늘은 성 마르티노 주교 축일입니다.
워낙 유명한 수도자이었기에 베네딕도회에서는 이날을 축일로 지냅니다.
“그가 군인으로 있던 시절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문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걸인을 보자 즉시
자신의 코트를 반 갈라서 그 걸인에게 주었다.
그날 밤 그는 꿈속에서 반쪽의 코트를 입은 그리스도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마르티노가 그의 코트를 나에게 입혀주었다.”
바로 이 사건이 결정적인 회심의 계기가 되어 마르티노는 즉시 세례를 받고 전역하여
‘그리스도의 병사(a soldier of Christ)’가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에 대한 성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일화입니다.
다음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이 환히 들어납니다.
바로 예수님이 공생활에 앞서 회당에서 성서를 펼쳤을 때 읽은,
예수님의 평생 활동 지침이 됐던 출사표(出師表)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이 말씀 그대로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상처 받은 모든 이들을 ‘안으로 끌어안고’ 사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셨기에 최후 심판 잣대도 이에 근거하여 이웃 사랑의 실천에 둡니다.
아주 실제로 곤궁 중에 있는 이들이요,
예수님은 이들을 종교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 형제라 칭합니다.
샤를로 후꼬 역시 여기서 영감 받아 예수님처럼 만인의 형제가 되어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곤궁 중에 있는 지극히 작은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바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사랑의 실천과 동일시합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바로 이런 이들이 하느님 마음을, 하느님 사랑을 지닌 이들입니다.
교회의 사도직 자선활동의 근거도 이 말씀에 있습니다.
바로 이런 구체적 곤궁 중에 있는 형제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이 최후심판의 잣대이며
이런 사랑을 실천한 의인들에 대해 주님은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곤궁 중에 있는 형제들을 돌볼 수 있는 하느님 마음을 선사하십니다. 아멘.(인터넷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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