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8/1 성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

이웅수 2018. 7. 31. 22:25

         고백신부들의 수호자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us Maria de Liguori)는 1696년 9월 27일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교 마리아넬라(Marianella)에서 주세페(Giuseppe de Liguori)와 안나 카발리에리(Anna Cavalieri) 사이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나폴리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습니다.
아버지 주세페는 나폴리 공국의 해군이었으며 어머니는 트로야(Troja)의 카발리에리 주교의 동생으로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던 알폰소는 불과 16세 나이로 나폴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결코 패소하지 않는 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다.
1723년 토스카나(Toscana) 대공과 어떤 공작 사이에 큰돈이 걸린 소송이 벌어졌는데,
이 소송에 참여했던 알폰소는 어떤 중요한 문서를 잘못 해석하고 서명한 사실로 패소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변호사로서의 자격이 상실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며 기도하던 중 1723년 8월 28일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찾아갔다가 신비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알폰소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1726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1730년 친구인 토마스 팔코이아(Thomas Falcoia)가 스칼라(Scala) 지방에 있는 카스텔라마레 교구의 주교가 되자, 알폰소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는 스칼라에서 수녀들의 피정을 지도할 때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를 만났고,
새로운 수도회에 대한 그녀의 환시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1731년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환시에서 받은 규칙을 따라 여자 구속주회를 설립하였고, 다음해 스칼라로 이주하여 팔코이아 주교,
파가노 신부와 다른 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구속주회(Redemptoris)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주님의 말씀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성직 수도회였습니다.
구속주회는 1749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같은 해에 열린 총회에서 수도회 종신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는 1762년 6월 20일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Santa Agata dei Goti)라는 나폴리의 한 작은 교구의 교구장 주교로 알폰소를 임명하였습니다.

그는 이 교구를 돌보는 13년 동안 성직자, 수도원 그리고 전 교구의 혁신을 계획하였으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자선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런 열정적 활동으로 중병을 얻었고, 또 죽을 때까지 괴롭혀온 류머티즘으로 마비될 때도 많았기 때문에 1776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의 허락을 받고 주교직을 사임하였습니다.
주교직을 사임한 후에도 그는 구속주회의 정립과 운영을 위해 주력하였고,
하지만 나폴리 왕국의 당국자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교회와 나폴리 왕국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교황령 외의 지역에 있던 공동체들이
알폰소의 관할권을 벗어나게 됨으로써 회는 두 계열로 분열되었다.
알폰소는 둘로 분열된 수도회가 다시 합쳐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787년 8월 1일 살레르노(Salerno)에서 사망하였다.

구속주회는 알폰소가 사망한 직후 다시 하나로 재건되어 발전하였다.
알폰소는 윤리, 신학, 수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Jansenism)과 반 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신심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책은 “마리아의 영광”입니다.
그는 1816년 9월 15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87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고,
그 후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0년 4월 2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고해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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