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12/23 대림 제3주간 토요일 (12.23)

이웅수 2017. 12. 22. 22:01

           그의 이름은 요한

어떤 은행에 어린 꼬마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은행 창구의 한 은행원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줌마, 저 만원만 빌려주세요.”
이 어린 꼬마아이의 말에 은행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한 중년의 신사가 이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만원을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데?”
아이는 떳떳하게 그리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신발을 사려고요. 날이 너무나 추워서 꼭 필요해요. 나중에 꼭 갚아드릴게요.”
아이의 신발은 헤어져서 발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옷도 낡은 옷이며,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중년의 신사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서 아이에게 신발을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옷과 장난감도 사주려고 하는데, 이 꼬마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필요한 건 신발뿐이라고요. 이 많은 것을 다 갚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이 신발만 가져갈게요.”

이 아이의 소박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실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큰 아름다움과 큰 힘과 큰 부는 그다지 쓸모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나 혼자 쓰기에는 너무나도 큰 것들이니 말입니다.

솔직히 작은 아름다움, 작은 힘, 작은 부만 있어도 세상은 아름답게 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금 더 큰 것을 찾는 우리의 욕심이 아닐까요?
그 욕심들이 아름다워야 할 세상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으며,
넉넉해서 차고 넘쳐야 할 이 세상이 부족하기만 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창조 때의 아름다움과 넉넉함은 사라지고,

대신 인간들의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느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즈카르야 역시 자신의 뜻을 더욱 더 내세우려 했기에

하느님으로부터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임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이 이름의 명명식에서 자신의 이름 쓰는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이름인 ‘요한’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에 맞게 행동했기에,

그는 다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욕심과 이기심을 통해서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대신 하느님의 뜻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진정으로 주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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