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12/30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토요일

이웅수 2017. 12. 29. 22:25

         내 것이라 생각되면 중독 된 것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내 것’이라 부르는 것을 많이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 가족, 내 사람, 내 집, 내 차, 내 명예, 내 돈, 내 학식 등의 단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내 것’이라고 하면 곧 그것의 ‘노예’가 됨을 알지는 못합니다.
노예란 주인의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얻으면 기쁘게 되고

사라지면 슬퍼지게 됩니다. 그러니 내 것의 노예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만 합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주는 평가의 노예가 된 처지를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내가 하느님께 속했나, 사람에 속했나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이 있다.
내가 몰두하는 것을 보면 안다. 약간의 비판에 분노한다. 세상에 속한 것이다.
약간의 거절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세상에 속한 것이다. 약간의 칭찬에 내 기분이 고양된다.
세상에 속한 것이다. 약간의 성공이 나를 흥분케 한다. 세상에 속한 것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대양에 떠있는 조각배와 같이 철저히 물결치는 대로 요동치는 인생이다.”

이 세상 것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고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는 멀리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어떤 것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어떤 마약 중독자가 너무나 마약에 끌려 다니는 것이 싫어서 전화기를 꺼 놨는데,
딸이 학교에서 아빠에게 전화가 안 되니 밤늦도록 울면서 기다려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약을 완전히 끊지 않는 이상 가족과 가까워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엇에 집착해 해 있으면 하나는 멀리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을 좋아한다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카인은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 것이 나의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을 제 맘대로 할 수 없기에
그것의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감사의 예물을 충분히 봉헌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아벨은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까지도 가차 없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그래서 세상 것의 집착이 아닌 세상 것을 모두 봉헌함으로써 증명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이기에 그것을 얻어도 또 그것을 잃어도 충격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저는 손가락 두 개가 잘렸는데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는 가진 것을 전부 빼앗아 가시더라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욥의 모범이 나옵니다.
세상 것에 초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 자유인인 것입니다.

어느 알콜 중독자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은 행복하게 살았지만, 동생은 그의 아버지와 똑같이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두 사람에게 각각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놀랍게도 형과 아우가 똑같이 답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아버지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고 하느님을 탓할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섬길 것인가는 다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 것과 비교당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남들이 우리를 개와 같다고 말한다면 누가 기분 좋겠습니까?
하느님은 이 세상 것들과 비교당해서는 안 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것을 아까워할 수 있겠습니까?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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