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의 삶을 잘 살자
오늘은 주님 봉헌축일입니다.
태어난 후 40일이 되면 맏아들은 주님께 봉헌해야하는 율법에 따라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봉헌 생활자들이 봉헌의 참 뜻과 그 사명을 되새기는 봉헌생활의 날입니다.
1997년 교황성하께서 봉헌생활의 날을 제정하시고 수도회,
사도 생활 단, 재속회 등의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우리자신을 다시금 주님께 온전히 봉헌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를 봉헌하며 봉헌 때 우리자신을 주님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헌금예절을 통하여 그 봉헌을 외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도 어느 부락에서 선교활동 중이던, 한 선교사가
수차례 전도하려했던 여인을 어느 날 아침 만났습니다.
그녀는 두 아들을 그녀의 손에 잡고 어디론가 급히 향하고 있었지요.
그 중 한 아이는 아주 잘 생기고 똑똑해 보였으며, 매우 건강해 보였습니다.
반면, 좀더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아이는 몸을 떨며 침을 흘리는 장애자였습니다.
선교사는 여인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지요.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아주 의외였습니다.
"저는 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우리 부족의 신에게 이 아이들 중 한 아이를 제물로 드리려 합니다.
그래서 강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대답에 놀란 선교사였지만 그들의 종교 관습을 알기에
무슨 말을 해야 이 여인의 행동을 만류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그녀의 비장한 결심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난처하고도 답답한 며칠을 보낸 후, 여인을 찾아 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아이에 대해서 차마 물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방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몸을 흔들며 나오는 큰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교사는 참 다행으로 여기며 여인에게 작은애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아이 중에 한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고 했으나,
정상이 아닌 아이가 여기에 있었으니 정상인 아이 역시 무사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선교사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 여인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기억 못하세요? 지난번에 만났을 때,
제가 우리의 신들에게 아이 중 하나를 제물로 드리러 강으로 간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선교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로 자기 아이를 제물로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큰 아이가 남아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아이 중 하나를 신들에게 드려야 했다면 아이에 대한 사랑은 어느 아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큰 아이를 제물로 드리지 않고 왜 작은아이를 제물로 드렸습니까?"
이에 여인은 놀라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신에게 그렇게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바칩니다."
선교사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우리도 그런 봉헌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답니다.
저 무지몽매한 종교의 신들을 대하는 사람들도 최상의 것으로 드리고자
자기 자식 중에서도 가장 똑똑한 자식을 바쳐야 함을 잘 알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고 있는 것은 혹시 찌그러지고, 병들고,
내게 이차적인 것들을 봉헌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언젠가 “첫째는 똑똑하니 서울대 보내 판사 시키고
둘째는 좀 모자라 세상 살기 힘들 것이니 신학교에나 보내겠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닌 지요?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느님이 주셔서 노령에 얻은 귀한 자식을 제물로 바쳐라 명하실 때, 납득이 갔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드리지요. 이것이 봉헌의 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성부께 당신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지금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지요?
헌금을 할 때 자신을 봉헌하듯 마음을 담아 봉헌하고 있는지요?
또 봉헌의 삶은 오늘 우리가 초를 축성하였데,
초와 같이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히듯이 자신을 희생하므로
그리스도의 빛을 밝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 전례에서는 예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8,12)라 하셨고, 봉헌의 삶을 바로 살아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되어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밝혀주어야 합니다.(마태오5,16참조)
제대의 초는 제대 상에 봉헌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며,
봉헌의 삶을 잘 살아 세상에 빛을 밝혀야 할 우리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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