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3/25 주님 수난 성지주일(나)

이웅수 2018. 3. 25. 01:25

       버림받은 예수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서 성 주간이 시작됩니다.
오늘의 전례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을 기념하는 성지 축성과 행렬,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케 하는 수난복음 이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의 전례에서는 이와 같이 두 가지의 상반된 양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나뭇가지를 흔들며 옷을 벗어 길에 깔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는 같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 외치는 사람들로 변합니다.

찬미와 저주, 환영과 배신이 함께 있는 성주간 첫날인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찬미했지만 왜 저주하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주님을 환영했지만 배신하게 되었을까?
제자들은 왜 주님을 홀로 버려두고 도망쳤을까? 왜일까요?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처음으로 주님을 영접할 때, 주님을 찬미하지 않았습니까?
뜨거운 영접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환영했고,
베드로 사도처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다처럼 주님을 팔아넘긴 적은 없는지요?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한 적은 없는지요?
좌도처럼 “너도 살리고 나도 살려봐라.”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한 적은 없는지요?

유다는 재물을 얻기 위하여, 현대의 표현을 빌리면 재물이 주는 편리함을 얻기 위하여 주님을 팔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따르는 고통과 두려움이 싫어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내가 신자인 줄 알면 불편할까 하여 자신이 신자라는 것을 숨긴 적은 없습니까?
대중식당에서 신자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성호를 긋지 않고 식사 전 기도를 하지 않거나 속으로 한 적은 없습니까?  
또 고통과 절망 중에 주님께 “당신이 주님이시라면 당신도 살리고 나도 살려 보시오.”라고 말한 적은 없는지요?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라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당신을 믿고 따라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런 시련도 해결해 주시지 않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까?
이렇게 고통과 시련 중에 있을 때 주님을 조롱하고 그분을 시험한 적이 없습니까?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끊고 자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당신 삶에 초대하셨을 때 기꺼이 응답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우리들이 아닙니까?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죽음에 나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 성녀 마더 테레사수녀님이 길을 가고 있는데 한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가보니 사람들이 둘러서 있고 그 중앙에 한 어린아이가 피골이 상접한 채 굶어죽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했습니다. “참 안됐다. 부모가 누구기에 저렇게 버렸을까!”  
그때 테레사 수녀님은 달려가 그 아이를 안고 울부짖었습니다.
“우리가 죽였습니다. 오, 불쌍한 아이야, 용서해 다오. 우리가 너를 죽였구나.”
사람들은 저 수녀가 돌았다고 중얼거리며 사라져갔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씩만이라도 나누는 사랑이 있었더라면 그 아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주위의 이런 일이 내게 아무상관 없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누는 사랑이 있을 때 부활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내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하 부르짖으면서도 우리 죄를 대신하여
그 큰 고통을 감수하셨던 예수님처럼 책임을 져야하고 그분의 제자라고 하는 우리는
그 고통에 참여하여 그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이런 죽음, 굶주리고 헐벗음에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
불의와 부정이 만연된 이 사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처럼 “우리가 죽였어요.” “우리의 탓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참 신앙인의 회개의 삶일 것입니다.

오늘 수난 복음에서 우리의 자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묵상하며,
주님과 함께 수난하므로 주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하느님을 배반하고
하느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당신 수난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나누어 함께 지고가자고 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함께하는 삶이 어떤 것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고
그것을 실천할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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