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주님을 모실 때
사람은 자고로 인정과 칭찬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누구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을 때 자존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랑과 신뢰와는 달리, 허영과 위선은 우리 안의 ‘거짓된 자아’가 ‘참된 자아’를 삼켜 버리는 죄를 낳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그를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태도를 질책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 능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복음의 힘에서 온 것임을 확신했기에,
사람들에게 받는 칭송에 우쭐대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의 감추어진 허영과 위선은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냅니다.
계명은 사람들에게 요구할 때만 필요하고, 내게 불리한 계명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경쟁과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남을 배려하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 될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병에 물을 담으면 ‘물 병’이 되고, 꽃을 담으면 ‘꽃병’이 되고, 꿀을 담으면 ‘꿀 병’이 됩니다.
통에 물을 담으면 ‘물통’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됩니다.
그리고 그릇에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되고,
김치를 담으면 ‘김치 그릇’이 됩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귀한 그릇이 되고, 천한 그릇이 됩니다.
좋은 것을 담는 그릇이나, 통, 병은 깨끗이 씻어 잘 보관하는 좋은 대접을 받지만
좋지 못한 것을 담는 ,병이나, 통, 그릇은 천하게 다루어 가까이 하기를 꺼려합니다.
우리의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대접이나 천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품위도 달라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나 보이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사랑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면,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의 계명을 지켜 “서로 사랑한다.”면
주님께로부터 사랑 받을 것이며 이웃 안에 현존하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동영상 > 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5/2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0) | 2018.05.01 |
|---|---|
| [스크랩] 5/1 노동자 성 요셉 (0) | 2018.04.30 |
| [스크랩] 4/29 부활 제5주일 (나해) (0) | 2018.04.28 |
| [스크랩] 4/28 부활 제4주간 토요일 (0) | 2018.04.27 |
| [스크랩] 4/27 부활 제4주간 금요일 (0) | 2018.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