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에 대한 교리 확립
오늘은 성 아타나시오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였던 아타나시오 성인은 325년 최초의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께서 한분이신 하느님이라는 그의 주장을 인정받아 정통 신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성인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는데요, 어린 시절을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면서 보낸 아타나시오는 328년 젊은 나이에 알레산드리아 주교로 임명됩니다.
그 후 처음 몇 년 동안은 이집트와 리비아의 모든 지역을 포함한 자신의 담당 사목구를 방문하며 사목에 전념했는데, 몇 년 후부터 아리우스파의 이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과 투쟁하며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335년에 아리우스파들은 아타나시오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직 박탈을 결의했고 이에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그를 추방한 뒤, 4년 뒤에 그레고리오라는 이가 주교직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인은 율리오 1세 교황의 열렬한 지지와 도움을 받고,
이탈리아 반도의 주교 50명에게서 만장일치로 알렉산드리아의 유일한 주교로 선언 받았으며,
콘스탄스 황제의 도움으로 다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복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황제가 죽은 뒤 아리우스파는 356년에 군대를 파견하여
아타나시오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성 테오나시오 교회를 급습하고 많은 신자들까지 죽이는
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성인은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6년간 피신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 황제로 즉위한 율리아누스 아타나시오를 362년에 다시 추방하였는데,
이 황제가 전사하고 발렌스가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을 때 아타나시오는 다시 주교로 복권되었지만
이내 황제는 아타나시오를 다시 추방하게 됩니다.
이에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이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키자 황제는 결국 성인을
366년에 다시 복권시킬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후 성인은 78세의 고령으로 죽기까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지니게 됩니다.
이같이 당시 정치와 종교의 권력다툼 속에서 아리우스 이단과 맞섰던 성인은
다섯 번이나 추방과 복직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한편 성인은 27권 신약성경 목록을 처음으로 만든 분이기도 합니다.
그 전까지는 신약으로 정해진 성경이 따로 없었고 많은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가 성경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 목록은 383년 로마 공의회에서 신약성서의 정경으로 인용되었고,
397년에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공포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키신 분은 아니었지만
참되신 하느님에 대한 교리를 확립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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