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3/11 사순 제4주일(나)

이웅수 2018. 3. 10. 23:46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

  오늘은 사순 제4주일로 즐거워하라 주일이라고 합니다.
오늘 성서말씀에서는 이 즐거움의 동기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자비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순절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셨음을 깊이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 성자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셨습니다.
  아들이 죄를 지어 교도소에 있다 해서 부모가 그 자식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들을 더 생각하고 걱정하여 사랑하게 됩니다.
만일에 잘못했다 해서 그 아들을 버린다면 그는 부모가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이 그렇다면 하느님의 사랑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 1독서에 보면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벌로써 바빌론에 귀양 갔다가 하느님의 자비로 풀려나는 내용을 전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위아래가 모두 썩어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이 나와서 회개를 촉구했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을 박해하여 못된 짓만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느님께로부터 벌을 받아 나라가 망했고 백성들 은 포로로 끌려가 혹독한 고생을 합니다.
피눈물 나는 쓰라린 체험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 지극하신 우리 아버지이시기에  벌을 주시면서도
못내 안쓰러워서 고통 받아 울부짖는 당신의 백성들을 그냥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페르샤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서 백성들이 고국을 찾아 돌아오게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벌을 허락하시면서도 죄인에 대한 사랑만은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큰 애정으로 당신의 백성을 바라보셨고 그리고 구원의 새 길을 훌륭하게 준비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옛날 '구리 뱀'사건을(민수기 21,4-9참조) 상기시키면서 예수님,
당신께서 바로 그와 같은 희생 제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과 그리고 그
것은 아버지 하느님의 극진한 애정의 발로였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구리 뱀 사건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함께 시나이 반도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에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서
하느님을 원망하여 불평들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만 믿으면 고생 뒤에 낙이 올 텐데도
바로 눈앞의 현실적인 고달픔만 가지고 불평을 하며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불 뱀을 보내시어 백성들을 벌주셨는데 나중에 백성들이 뉘우치자
모세로 하여금 구리 뱀을 만들게 하여 그 구리 뱀을 보는 사람은 불 뱀에 물려도 죽지 않고 치유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벌을 주시면서도 그 옆에는 항상 자비의 은총도 함께 마련해 두십니다.
죄가 만은 곳에는 실로 은총도 풍성하게 내려집니다(로마5, 21 참조).
죄가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간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통으로 치유되었으며 인간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사랑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과 죽음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3,16).
성서에 이 구절만큼 우리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늘 그분의 뜻을 헤아려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은혜로운 사순 시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면 그는 참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왜 기도해야 되고 왜 선행을 해야 하며 왜 사랑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그는 실로 불쌍한 인간입니다. 
어떤 형제가 죄를 혼자 몽땅 짓고서는 도리어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하느님이 선이라면 왜 자기를 그렇게 버려두시느냐고 절규했습니다.

신앙은 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통사고에서 생명을 건진 후로는 하느님 사랑을 진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특히 즐거워하라 주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지만 불원간에 그분의 부활에 동참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와 실수에는 아픈 매도 있지만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다시 한 번 성찰해 보고 하느님의 자비에 늘 푸른 기대를 걸도록 합시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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