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3/20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이웅수 2018. 3. 19. 22:51

       십자가 = 영광의 옥좌

오늘 독서는 민수기의 말씀으로 불평 물만을 일삼는 백성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려 죽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지금도 불평 물만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농 섞인 말투로 민수기에 불 뱀을 보내어 물려 죽게 했다고 말합니다.
민수기는 40년간 광야에 머물면서 불평과 반항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을 목덜미가 뻣뻣한 백성으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광야의 여정을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상에서 하느님을 향해가는 우리자신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살아가며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요한복음은 주로 두 개의 개념, ‘위와 아래’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너희는 아래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23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독서에 나오는 그들의 조상처럼 그들은 완고하여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불신과 완고함은 ‘세상’과 ‘아래’에 속하는 것으로서  죄악이며 그러기에 구원받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위에서 오시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위에서’ 왔는가. ‘아래서’ 왔는가?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판단 기준과 가치에서 과감히 탈출해야 합니다.
아래의 시각, 즉 세상의 시각으로 보는 삶에서 위의 시각, 사랑의 시각,
하느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가치 기준이 바뀌어야 참 신앙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천상의 시각으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며 방법입니다.

또 오늘 복음, 요한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 즉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장소가 십자가임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십자가는 말씀의 옥좌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28절)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은 겸손의 극치였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사형의 도구였지만 하느님에게서는 구원의 도구였고,
예수님에게서는 부활하는 도구였습니다. 천상영광에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바로 볼 줄 아는 이가 구원에 이르는 길, 천상영광의 여정을 방황하지 않고 바른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위에서’ 온 사람은 십자가의 신비를 바로 알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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