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라.
어느 대학의 유명한 윤리학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느 부부가 남편은 성병에 걸렸고, 부인은 폐결핵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자녀가 넷인데 하나는 얼마 전에 병들어 죽었고, 지금 세 자녀마저 다 폐결핵 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부인은 또다시 임신을 했다. 이런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의견을 말해 보라.”
똑똑하다는 학생 하나가 선뜻 대답을 했습니다.
“낙태를 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는 단호하게 “자네는 지금 악성 베토벤을 죽였네.”
악성 베토벤이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말년에 귀가 어두웠습니다.
음악가로서, 작곡가로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베토벤은 이렇게 태어나 한평생을 어려움 속에 살면서 우리에게는 그 귀한 음악을 남겨주었습니다.
한 순간의 결정, 한 사건의 결정이 인간적으로 되느냐, 신앙적으로 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실제로 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어려운 것은 부부관계를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혼배미사 때마다 봉독하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들으면 호세아서의 말씀을 기억케 합니다.
하느님께서 호세아에게 창녀인 “고멜”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맞으라고 명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로 맞아 사랑해 줍니다.
삼 남매를 낳아 잘 사는가 싶었는데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다시 집을 나가 창녀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호세아에게 그를 몸값을 치르고 데려다가 사랑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런 결함이 있다하더라도 끊임없는 사랑으로 배우자를 깨끗하게 하고
정결케 하는 것이 부부관계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함께하는 사람을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극히 순결하고 당신은 부정하다고 하는 비판은 스스로 부정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진정한 사랑을 지니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서약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은 하느님의 걸 작품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성 가정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노력에 달렸고,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밭에 뭍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듯이
가정의 화목도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살만한 가치의 보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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