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5/27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 축일 (나) 청소년 주일

이웅수 2018. 5. 26. 23:59

        사랑이신 하느님

   오늘은 삼위일체 대 축일이며 청소년 주일입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인간의 이성으로 깨닫기 어려운 하느님의 신비이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신비 중에 신비입니다.
삼위일체란 바로 하느님의 삶, 하느님의 업적, 하느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사랑자체이시기에 그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하고,
사랑이시기에 늘 움직이시고, 활동하시고, 인간과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인간이 되시고,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어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원의 주님을 또한 믿고, 성령, 위로자, 그리스도의 영, 하느님의 영, 교회의 영, 일치의 끈, 만물 위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힘이며, 삶의 원동력인 성령을 우리는 믿고 고백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명 서로 다른 위격임에도 한 분의 하느님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미 학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했습니다.
주제는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 이였습니다. 열띤 발표와 토론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학설과 의견이 나왔지만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 즉 우리보다 더듬이를 한 개 더 가지신 분이시다.”

  삼위일체 교리를 들을 때마다 듣는 이야기입니다.
성 아구스띠노가 삼위일체 교리를 깊이 생각하며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 때 한 소년이  
모래 구덩이를 파놓고 그곳에 조개껍질로 바다 물을 퍼다 붇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하는 거냐 물으니 바다 물을 모두 이곳에 갖다 부으려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성인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소년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삼위일체의 뜻을 깨닫기는 더욱 어려우실 것입니다.
굳게 믿으세요.”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이 오묘한 신비는 개미들이 깨닫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이
우리의 이성으로는 깨닫기 어려운 신비이며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1서 4, 8) 라고 하셨듯이 생활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체험을 통하여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 1,26) 하시고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며 삼위일체의 모습대로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즉 삼위일체 신비를 실천할 때 참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참으로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말씀”(에페소 5,32)이라고 하셨든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마태오 19,5)하신 말씀도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 사랑의 일치를 이룰 때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삼위일체의 신비를 실천할 때 화목한,
사랑의 일치로 주님의 현존을 느끼는(마태오 18,19-20참조) 성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성부, 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자,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들여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의 관계가 성령이라고 설명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11) 라고
예수님께서 기도 하셨듯이 삼위일체 신비를 실현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원리입니다.
  서로간의 사랑의 실천으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곧 삼위일치의 신비를 실현하도록 노력하는 삶이
우리 신앙인의 참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가정에서, 구역, 반 소 공동체에서,
또한 우리 본당 공동체가 서로간의 사랑으로 삼위일체 신비를 실현하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서로 사랑하는 자만이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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