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의 하느님
오늘은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믿음과 용기입니다.
봄철에 나무에 새순이 돋아 자라나는 모습은 자라는 것이 보이는 듯 자라남을 보게 됩니다.
생명의 신비이며 크신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사랑의 씨앗, 믿음의 씨앗도 싹이 트고 그렇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작은 자안에서 성장이 됩니다.
사람이 고통이나 슬픔을 만나게 되면 작아지게 됩니다.
부끄럽고 허망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은 작아졌을 때 눈이 열리게 되며 볼 수 있으며, 하느님 역시 작은 자 안에서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주 작게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긴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시련과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난 뒤에는 전 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으며 후에는 그리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갖은 고난을 다 겪었습니다. 실로 운명이 기구한 민족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얘기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귀양 갔을 때의 일입니다.
나라는 이미 망했고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처참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희망도 없었고 미래도 없었습니다.
이때 예언자 에제키엘은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소망과 힘을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연한 가지의 작은 순처럼 보잘 것 없지만
그 순이 자라서는 주위의 다른 큰 나무들보다 크게 자라 온갖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작다고 해서 슬퍼할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작다는 것은 키가 작다는 것도 아니며 크기가 작다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가난한 자나 병든 자, 실패한 자나 고통 받는 자 등 즉 하느님 앞에 낮은 자, 작은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 작은 자, 낮은 자 안에서 빛나고 성장이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창녀나 세리, 나병환자나 귀머거리 등이 구원을 받았지만
잘나고 똑똑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이 자라서는 어떤 나무보다도 더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바라볼 때에 신앙은 겨자씨보다 더 작게 보입니다.
믿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믿어서 팔자가 고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바쁜 세상에 그것은 시간 낭비요 돈 낭비요 또한 정력 낭비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눈으로 보면 믿음은 정말 우리의 팔자를 고쳐 줍니다.
그리고 또 믿음이 밥 먹여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로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밥 먹는 은혜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밝고 풍요롭게 사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돈이나 세상의 지혜로써는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부셔져 작아져 봐야 그 오묘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잣집에 식모가 있었는데 과부였습니다.
부자는 사장이었고 돈도 많아서 부인도 자녀들도 호사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월급이 적었고 사는 것도 아주 오죽잖았습니다.
그런데 그 식모는 성당에 다니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일이면 머리를 곱게 빗고 헌금 돈을 챙겨서 성당에 가는 것을 볼 때마다 주인 식구들은 웃었습니다.
종교는 없는 자들이나 믿고 매달리는 허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장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돈도 소용이 없었고 의학박사라는 높은 의술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심부름 왔던 식모 아줌마가 죽어 가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나그네길이니
세속의 때를 다 털어 버리고 하느님을 믿어 보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감격해서 울었고 잘못 살아온 죄악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차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식모 아줌마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저 아줌마처럼 크고 위대한 사람이 있나 할 정도로 그 집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 딸이 먼저 믿었고 나중에는 사장 부인도 성당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돈도 지식도 믿음 앞에는 한낱 작은 티끌이요 먼지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믿음이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믿음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자들만이 믿음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진정 작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크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크고 위대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실로 작아졌을 때 믿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작은 자 안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작은 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은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작은 자가 아닙니다. 그 믿음은 세상의 어떤 지혜나 능력보다도 훨씬 크고 위대합니다.
따라서 작은 마음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그 안에서 건설하도록 합시다.
작은 자는 진정 큰 사람입니다.(강길웅신부강론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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