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7/16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이웅수 2018. 7. 15. 14:08

          칼을 주러왔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쉽게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고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시니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옵니다. 죄악을 거부하는 '결단의 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칼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6,17).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 받아들여 참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는 사람과
그릇된 욕망을 가진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향할 것인가? 이에 대한 태도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다 각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견해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상하고 적대감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과 인간적인 것이 끊임없이 대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칼을 선택한다면 그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열매 맺게 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넘쳐 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은 상대방을 위해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는 칼입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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