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삼켜야 한다.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신앙의 길은 축복의 길이며 동시에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복을 기대하는 자는 먼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며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또 꼴찌부터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하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드러나는 영광만을 기대했는데 그분이 먼저 죽어야 한다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는 마음속엔 현세적인 축복에 대한 기대만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언덕으로 올라가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십자가가 생기면 신앙을 내던지고 하느님을 외면합니다. 신앙은 그래서 어리석게 보입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어느 교회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우간다는 당시 독재자 이디아민이라고 하는 악명 높은 대통령이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케파썸팡기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훌륭한 분으로 7000명이나 되는 큰 교회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설교를 하며 부도덕하고 부정부패한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많은 선량한 백성이 억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부에 알려졌습니다.
어느 부활절 아침에 비밀경찰 5명이 찾아왔습니다. 모두는 다 그것이 무었을 뜻하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목사를 향하여 총을 겨누며
“반국가 사범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고 처단하기 위해 왔소.” 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미 각오를 한 듯이 태연스럽게 “오늘은 부활절 아침입니다. 나 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게 2분만 시간을 주시면 기도를 하고 나의 생을 내 목회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우간다의 통치자 이디아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 명령을 원치도 않으면서 받아들여야하는 이 다섯 사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간다 국민에게 자유를 주옵소서. 내가 사랑하는 이 조국이 사랑의 땅, 의의 땅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나의 죽음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아멘.”
기도하는 목사님의 눈이 한없이 눈물이 솟았고 비밀경찰들도 울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대장되는 사람이 “엄청난 실수를 범했습니다.
못 본 것,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라 말하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갔습니다.
크리스챤이란 십자가를 이해하는 사람,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에 이르는 길이며, 십자가는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선인들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이것은 세상 끝날 때까지 인류가 자신에게 던지는 외로운 질문입니다.
악한 이들이 고통을 받고 선한 이들은 당연히 평화와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왜 세상의 현실은 거꾸로 드러나고 있느냐.
도대체 이런 모순 속에서 믿음은 또 무슨 해답을 주느냐. 바로 그와 같은 질문이 예수님에게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한 선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분은 생전에 좋은 일만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주셨고 병자를 고쳐 주셨으며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참 삶의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대가는 모욕과 죽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으로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의 방법치고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어리석게 보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위대한 뜻이었습니다.
고통은 비록 마귀의 유혹에 빠진 인간의 죄에서 왔지만 그러나 인간을 죄에서 건질 수 있는 힘은
선인의 억울한 고통이었습니다. 오늘의 세상에서도 선인들의 고통이 세상을 구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자신을 치유시키며 역사를 전진시킬 수 있는 것은 선인들의 고통 때문입니다.
억울한 이들의 희생 때문입니다. 만일에 이러한 하느님의 위대한 신비를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면
그는 보다 행복한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주님은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십자가를 기꺼이 짐으로 주님 구원사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고통이 귀한 보물이며 고통이 우리를, 세상을 구원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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