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응답하는 삶
하느님께서 여러 동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창조된 모습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새가 하느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하느님, 불공평합니다. 뱀은 독이 있고, 사자는 이빨이 있고, 말에게는 말굽이 있어서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데, 우리 새들은 아무것도 없이 당하기만 합니다.
우리에게도 뭔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을 주십시오.”하느님께서도 생각해보시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새가 가지고 있었던 손을 날개로 만들어 주셨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다시 새가 하느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새로 만들어주신 이 날개 때문에 너무 무거워서 전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고,
손으로 하던 일을 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불편해졌습니다.
왜 날개를 만들어서 저희를 더 힘들게 하십니까?”그러자 하느님께서는 호통을 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새야! 너에게 준 날개는 지고 다니라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늘을 높이 날아올라 적으로부터 피하라고 준 것이다.”새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날개의 사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단순히 내게 주어진 하나의 짐으로만 생각했기에, 그 사용법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지금 내게 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끔 했던 것들이 바로 내가 하늘을 날아오르도록 하는 날개가 아니었을까요?
우리들은 그 사용법을 잘 몰라서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대 데레사성녀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주시는 은총의 선물임을 알지 못함에서 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질책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질책은 단 두 가지의 경우뿐입니다.
하나는 위선을 일삼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많은 은혜를 입고도 배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책입니다.
이번 경우는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베푸셨고 공을 드리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던 갈릴래아의
유명한 도시인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은 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세 도시는 랍비들의 종교교육이 가장 성행하던 종교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만과 자기도취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즉, 날개를 달아주었으나 그들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빠다킹참조)
우리도 하느님의 무수한 은총을 입고 삽니다.
그 크신 사랑에 바로 응답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질책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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