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계명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하는 말씀이지만,
믿지 않는 선의의 많은 사람도 이 말씀에 깊이 감동하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 비유의 보편적인 호소력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이의 마음에 심어 놓으신 사랑의 계명을 감지하게 됩니다.
고통에 빠진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이나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어떤 높은 지위에 있든,
얼마나 많은 지식과 언변을 지녔든, 그는 가장 중요한 ‘인간다움’을 잃은 자입니다.
‘인간다움’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의 근원이자 행동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로써, 왜 우리가 그리도 자주 인간다움을 잃고 사는지를 깨우쳐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나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상관없는, 굳이 마음 쓸 필요 없는 익명의 ‘타인’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마르티니 추기경은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와 가진 서면 대담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우리 스스로를 성화하기 위한 이 세계는 존재에 관한 가치중립적인 이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자연 현상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세계는 얼굴이라고 하는 이타성의 중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세계도 존재한다
(마르티니·에코 공저,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서).
나와 무관한 ‘타인’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 만날 ‘이웃’으로 존재합니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서 ‘이웃의 얼굴’을 보는 것, 그것이 보편적 윤리입니다.
또한 그 윤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겨 주신 ‘사랑의 계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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