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11/2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이웅수 2018. 11. 1. 22:57

         우리도 죽을 것입니다

어제는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기억하며 기쁨의 축제를 가졌고,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오늘은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아직 주님의 품에 들어가지 못한 연옥의 영혼들을 기억하며,
이분들이 주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으로 영원한 안식에 드실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전례를 통하여 “성인들의 통공”을 체험하며
우리들은 죽든지. 살아 있든지 주님 안에 한 형제자매임을 느끼게 합니다.
“교회는 교회의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하여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도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갈 것임을 기억케 함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셨으니 죽음의 운명이 분명히 다가올 것을 슬퍼하면서도
장차 불멸의 생명을 얻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이 있기에 위로를 얻나이다.
우리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 ” 라고 감사송에서 고백합니다.
이는 교회의 믿음이오, 우리의 믿음입니다.
현세의 삶을 마감하는 죽음이 두렵고, 사랑하는 모든 이와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슬프지만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이 시작됨을 믿기에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이기에, 또 이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을 뵈올 수 있기에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주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사제생활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임종을 지키는 사람들이 성인의 죽음이라고 감탄할 정도로 얼굴에 광채를 띠며,
기쁘게 사랑하는 주님을 뵙는 듯 죽음을 맞는가하면,
생의 애착 때문에 끝까지 살려고 발버둥 치다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신앙 안에 열심히 살던 사람들은
죽음 앞에 겸손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준비된 삶을 살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산다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처럼 죽음을 자매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면 죽음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을 뵙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죽음이 슬퍼할 일이 아니라 기뻐하며 고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죽음을 만나기를 “고대하는 사랑스런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죽음을 정다운 친구처럼, 기다리던 애인처럼,
주님께 나를 인도할 인도자처럼 반가이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죽음’의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썩는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하고, 주님 앞에, 이웃 앞에 자신이 죽어 없어질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현존하시어 우리를 부활의 기쁨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죽음은 죽음의 삶을 잘 살아 잘 준비된 사람에게는  부활의 여정이며,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죽음은 늘 우리와 가까이 아니 함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