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째 가는 계명
오늘은 연중 제31주일입니다. 오늘 성서말씀에서는 첫째가는 계명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가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늘 제1독서인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대목을 ‘쉐마'라고 합니다. 쉐마는 ‘들어라'라는 뜻입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 분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4~5).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꼭 이것을 외웁니다.
이것은 그들의 기도이며 또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쉐마'를 적어서 목에 매달고 다니기도 하며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의 법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많은 율법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613조목이며 이 중에 무엇을 ‘하라'는 명령 248조목,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령이 365조목입니다.
율법이 이처럼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다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지도 잘 몰랐습니다.
소위 율법학자라는 사람들도 율법의 핵심을 몰랐습니다. 율법의 모순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늘 율법학자가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께 와서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솔직한 사람이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학자들이 그 당시에 많이 있었지만 말만 서로 요란했지 핵심은 몰랐습니다.
율법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항상 명쾌합니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율법의 613조목을 함축하여 한 마디로 요약하여 명쾌한 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앞면은 하느님 사랑이요 뒷면에는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별개의 얼굴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근원은 하나며 또한 내용도 결국은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생애 자체가 사랑이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을 떠나서는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사랑 밖에서는 무엇을 행하신 적도 없으십니다.
사랑으로 오셨다가 사랑으로 사셨으며 그리고 사랑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도 그 삶을 본받아야 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417년에 죽음을 맞이한 곱트 정교회의 수도승 암바 비쇼이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얘기를 전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스승인 그에게 종종 발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들에게도 발현하실 수 있도록 청했습니다.
암마 비쇼이는 이에 동의하며 그리스도께서 정해진 날 그들을 만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바나 사막 전체가 그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어 아주 기뻐했습니다.
정해진 장소를 향해 가는 중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리스도를 만나러 간다는 좋은 핑계거리가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그를 데려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암마 비쇼이가 지나갔고,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부탁입니다.”라고 말하는 그 노인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암마 비쇼이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로 그의 어깨 위에 그 노인을 태웠습니다.
그 날 –말할 필요 없이- 그리스도께서는 암마 비쇼이만을 만나셨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함을 통해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이라 하시며 주신 말씀은 이를 잘 성명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바른 길이며,
그러기에 최후의 심판의 기준이 얼마나 이웃을 잘 섬기며 사랑했는가에 두셨습니다.(마태오 25,31~46 참조)
그리고 요한 사도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느님을 안다. 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을 사랑이시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암바 비쇼이의 에피소드처럼
이웃사랑을 살 때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부자요 아무리 큰 학식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가 사랑을 하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받는 것도 기쁘지만 사랑을 하고 베푸는 것은 더 기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이런 사랑의 믿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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