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11/12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이웅수 2018. 11. 11. 20:58

       동방교회의 첫 성인

폴란드의 볼리니아 지방 블라드미르에서 태어난 요한 쿤세비크(1580-1623년)는
청년 시절에 어느 상인의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 그는 주인의 놀라운 제안을 뿌리치고,
1604년에 성 바실리오의 우크라이니아회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고, 요사팟이란 새 이름을 받았다.
그후 그는 1609년 비잔틴 예식에 따른 사제로 축성되었는데, 그의 탁월한 설교가 큰 명성을 얻게 했으며, 우크라이나 교회와 로마 사이의 일치를 도모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오늘날 러시아에 있는 비텝스크의 주교가 되었는데 그때 그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다.
대부분의 수도자들은 전례와 관습에 간섭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로마와의 일치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사팟은 교회 회의와 교리 교육, 성직자들의 재교육,
자신의 표양 등으로 리투아니아에 있는 대부분의 희랍 정교회를 일치에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에 파벌적인 교계 조직이 구성되었으며 요사팟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요사팟이 ’라틴화’되어 그의 모든 신자들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폴란드의 라틴 주교들에게도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비텝스크로 갔다.
혼란을 야기 시켜 요사팟을 주교 좌에서 쫓아내려는 음모가 꾸며져 있었다.
사제 한 사람이 바로 요사팟의 집 정원에서 그에게- 모욕을 주도록 파견되었다.
요사팟이 그를 물리치고 자기 집 문을 닫았을 때 반대자들은 시청의 종을 울렸고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그 사제는 집에서 나갔지만 몇몇 군중들은 주교관으로 쳐들어왔다.
도끼, 창에 찍혀 머리가 터지고 총에 맞은 요사팟의 시신은 강에 던져졌다.
나중에 그의 유해는 오늘날 폴란드의 비알라에 안장되었다.
그는 동방 교회에서 최초로 시성된 성인이다. 1867년 비오 9세 교황님께서 시성하셨다

분노한 군중들에 둘러싸인 요사팟 주교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비텝스크의 시민 여러분은 나를 죽이려 합니다.
여러분은 거리에서도, 다리 위에서도, 도로에서도, 시장에서도, 도처에서 나를 해치려 음모를 꾸몄습니다.
나는 여기 여러분 가운데에 목자로서 있으며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내 목숨을 바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성베드로와 그의 후계자인 교황의 수위권을 위하여
또한 거룩한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성바오로수도회홈 참조)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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