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는 삶
강화도 전등사에 가면 대웅전의 육중한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을 볼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사찰을 수호하는 원숭이나 다른 짐승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거기에 얽힌 전설 때문에 여인으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전등사를 건립할 당시 그 건물을 건축하는 도편수가 일이 끝나면 주막을 드나들다가
그곳 주모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도편수는 자기가 버는 돈을 주모에게 그대로 가져다주면서
일이 끝나면 주모와 함께 살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웅전 불사를 마무리할 때쯤 주모는 그가 번 돈을 몽땅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도편수는 배신감과 분노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그 괘씸한 여인의 나부상을 만들어 불사의 육중한 지붕을 영원히 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 전설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해지지만,
자신이 지은 죄업(罪業)을 그런 모습으로 지고 산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맞은 사람은 발을 뻗고 잘 수 있지만 때린 사람은 발을 뻗고 자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듯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마음이 늘 불안하고 무거운 것이 짓누르는 듯 힘겹게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가 죄 없는 아기들을 살해합니다.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의 특징은 간교하고 잔인합니다.
불안한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잔인한 죄를 저지릅니다.
이런 헤로데의 그림자를 우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태아들의 생명이 인공적으로 유산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요?
이익 때문에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악행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데 남에게 못할 짓을 하고 살면, 결국은 그 모든 죄업을 자신의 내면에서 알게 모르게 지고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뺨을 치면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내어 주며(마태 5,39-40 참조) 살라고 하셨지요.
세상 것에 탐욕을 부리거나, 작은 것에 미련을 두어 집착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는 뜻입니다.
죄와 탐욕에 눌려 사는 것보다 손해보고 버리며 사는 것이 훨씬 자유롭고 평화롭습니다.
이것이 인생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방법입니다.(모셔온 글)
유가에서 도덕적 심성을 수양할 때, 그 근거로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내세웁니다.
사람의 마음은 본디 하나지만, 작용할 때에는 ‘도심’과 ‘인심’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심은 천명에 따라 나오는 것이고, 인심은 인간의 욕구에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도심인 천명을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하늘의 법도를 지키지만,
인심인 사사로움을 따르는 사람은 악에 물들고 죄에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가문만이 영원한 왕족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참된 왕을 살해하려고 그 또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백성의 억울한 하소연도 깡그리 묵살해 버립니다.
오늘날에도 유가의 ‘인심도심설’은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도심을 외면하고 자신의 사사로움만 좇는 현상은 지도층과 배운 자나 가진 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인심만 좇아가는 사람은 도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정면으로 맞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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