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12/25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이웅수 2018. 12. 24. 22:58

         임마누엘

‘어미새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짧은 사연입니다.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영훈이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함께 뒷동산에 올라갔다가 어미 새를 따라 둥지 밖으로 나온 새끼 때까치 한 마리를 잡았다.
아직 어린티를 벗지도 못한 새끼 새를 손에 쥐고 신이 나서 집으로 와서
끈으로 다리를 살짝 묶어 감나무 아래 밑동에 매어 놓았다.
그리고 싸리나무로 만든 흑갈색 병아리 막으로 새끼 까치를 덮어 놓았다.
그런데 잠시 후부터 그 감나무 꼭대기에서 새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분명 때까치였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을 보고
영훈 머릿속에는 잡혀온 때까치의 어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불쌍한 새끼 새를 빨리 놓아주라는 사촌형의 말에도 영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든 어두운 밤에도 어미 새와 새끼 새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영훈은 일찍 일어나 메뚜기를 잡으러 뒷동산에 갔다. 새끼 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다.
이슬비에 바지가 다 젖도록 돌아다닌 뒤 겨우 메뚜기 몇 마리를 잡아오고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새끼 때까치 주변에 죽은 메뚜기와 거미가 몇 마리 있었던 것이다.
“혹시 형이 이 새끼 새에게 먹이를 준거야?” “아니” “참 이상하네! 형이 넣어준 줄 알았는데”
아무도 먹이를 넣어준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어미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 것이 틀림없었다.
영훈은 그때, 자신이 어린 새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새끼는 어미 새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 자라야 하는 것이다.
곧바로 다리에 묶여 있던 끈을 풀어 동산으로 날려 보냈다. 새끼 까치가 어미 새의 품에서 잘 자라기를 소망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사연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머니사랑의 위대함을 많이 보아왔고,
또한 이 사랑이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물이라고 여기는 작은 동물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새끼 새를 사랑해도 어미 새만큼 사랑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생명들은 이런 ‘사랑의 본성’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본성이란 그 것이 그것이 되게 하는 절대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만약 기러기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동해야 하는 본성이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아야 하는 본성 또한 무시된다면 인간이건 동물이건 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2004년 12월 26일 태국에서 쓰나미가 단 10분 만에 5,000 명, 30분 만에 13만 명, 그리고 30만 명을 삼켜버렸습니다. 이 때 성탄절 휴가차 여행을 왔다가 사고를 당했던 한 스페인 가족의 실화를
영화로 근래에 ‘더 임파서블’이란 제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늘 일 때문에 바쁘기만 했던 ‘마리아’와 ‘헨리’는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아, 세 아들과 함께 태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 가족이었지만 또한 특별히 사이가 좋은 가족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사춘기를 맞는 큰아들 루카스는 늘 부모에게 불만입니다.
이제는 부모가 거북하고 필요 없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쓰나미로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루카스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엄마는 물에 휩쓸려가는 루카스를 잡기 위해 자신이 잡고 있던 나무를 포기합니다.
그러다가 심한 상처를 입게 됩니다. 루카스는 자신을 위해 부상당한 엄마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는 말썽부리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빠와 동생들을 찾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성탄 선물은 여행이 아니라 자신들도 모르며 살아왔던 가족 간의 사랑이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때는 가족의 울타리, 또 그 사랑이 부담스럽고 거북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본성입니다.
그 본성이 무시될 때 절대 인간답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우리 스스로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성탄절에도,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랑의 표징으로 사람이 되셨어도
우리는 그 사랑보다는 세상의 즐거움으로 더 자신을 채우려고 합니다.
마구간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보다는 베들레헴의 도시의 어지러움을 택합니다.
그렇게 올 해 성탄절도 그냥 지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또 그래서 외로우면 절대 인간답게 살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를 낳아주신 분, 즉 우리의 창조자의 사랑이 아니면 결코 만족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합니다.
그 사랑을 인정하려면 먼저 지금 내가 그분 없이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내 외로움을 전혀 상관없는 것들로 채우려하다가 끝나고 맙니다.

얼마 전 저를 찾아 왔던 분들의 대화 중에 한 분이 나이가 들어가 외롭다고 하는 말에
개신교에서 개종하신 분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너와 함께 계신데 왜 외로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 마음에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태어나십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받아  들인 다면  외롭지 않은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소년들의 용기를 훈련하는 독특한 방법을 썼습니다.
이들은 소년들에게 숲 속에서 야생동물들과 함께 밤을 지내게 만들면서 소년들의 담력을 키웠습니다.
시험을 받는 날 밤, 소년은 얼마나 무서움을 느꼈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지키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나와 함께 계셨고 나를 지켜주셨던 그분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 수 없음을 인정해야합니다.
내가 부모의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외롭다면, 이젠 나에게 주어진 본성상 나를 존재하게 하신 분의 사랑이 있어야만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혼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때, 그렇게 내 마음을 고요한 마구간으로 만들 때 그 마음에 오늘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참다운 평화와 기쁨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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