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어느 날 상점에서 외투 한 벌을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입어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커다란 보석이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보석이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산 옷 주머니에 들어있었잖아.’
‘그래도 내 것이 아닌데 빨리 돌려주는 게 맞겠지?’
이러한 정반대의 두 생각이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현자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현자는 이렇게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산 것은 외투이지 보석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상점에 가서 돌려줄 때는 꼭 자녀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리하면 보석 내놓는 것은 아쉬울지 몰라도 그보다 몇 배 귀중한 것을 당신의 자녀에게 주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거짓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먼저 그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자신은 거짓으로 둘러싼 삶을 살고 있다면,
자녀에게 정직하라고 아무리 말한다 해도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이 모범의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모범은 나와 상관없다면서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뜻에 따라 좋은 모범을 세상에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한 번 이상 바칩니다.
신자들은 교회 공동체를 가족으로 생각하여 서로 “형제님! 자매님!” 하고 부릅니다.
혈육의 끈을 넘어 예수님 안에서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근거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하느님의 뜻이 내 삶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성모님께서는 처녀임에도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을 믿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알아듣기 힘든 하느님의 섭리이지만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길로 받아들입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이 시키는 것이 무엇이든지 자신의 평범한 삶 안에 실천합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이러한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열렬히 소망하기보다는 주어진 사소한 것들을 충실하게 충족시키길 원하십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과 온전히 일치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성모님을 모르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모님을 ‘아기 예수님의 대리모’로 비하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그분이 가장 아름답게 가장 완전하게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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