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상 = 하느님
우리 모두의 유일한 이상은 하느님입니다.
성녀 글라라가 집을 나와 프란치스꼬 성인을 찾아 갔을 때
“너 무엇을 원하니?”라고 물었을 때 “하느님만을 원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하느님만을 원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 우리의 이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 인디언들에게 오랜 세월 전승되어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추장이 종족을 잘 다스려 오다가 나이가 많아져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아들 셋 중에 한명을 선택하여 추장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시험을 하기 위해 세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섰습니다.
하루 종일 험한 산을 탔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숨도 찼습니다. 목이 마르고 배도 고팠습니다.
지칠 때가 되고도 남았지만 추장은 도중에 쉬는 일이 한번도 없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깊은 산에 이르러 추장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고 높은 그 나무 위에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드디어 시험을 합니다.
먼저 큰 아들에게 묻습니다.
“네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푸른 하늘과 나무 가지가 보입니다.” “너는 낙제다.”
다시 둘째 아들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이 보이느냐?”
“나무 가지와 그 위에 있는 독수리가 보입니다.” “네게도 실망이다.”
마지막으로 막내에게 물었습니다.
“네 눈에는 무엇이 보이느냐?” “독수리의 가슴팍이 보입니다.” “너는 됐다. 활을 쏘아라.”
막내는 시위를 당겼습니다. 추장은 막내를 보고 선언합니다. “네가 추장이다.”
사냥을 하는 사람이 오메가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를 바로 안 막내아들이 추장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전통을 고집”하고,
종교의식을 통하여 치부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질책하고 계십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봉사한다는 구실로 많은 경우에 애덕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의 초점이 예수님께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그분이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세상이 몇 백번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절대로 흐트러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면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과 친교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것입니다.
주님만을 향하고 그분의 음성을 양심을 통하여 듣고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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