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응답
오늘은 연중 제5주일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해 사람들을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 바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와 진실한 고백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그 사람은 성화 되며 하느님 앞에 의로운 존재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것이 곧 주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풍성한 은총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 등산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늦게 하산하는 길인데 즉시 어두워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급히 하산하다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떨어지다가 나무 가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잡고 있는 나무 가지가 부러지지 않을까,
절벽에 심어진 나무이니 뿌리 채 뽑혀지지나 않을까, 불안 초조함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절규하듯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저를 살려주시면 하느님께서 무엇이든 원하시는 것을 다하겠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기도가 끝났을 때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진정 살고 싶거든 그 나무 가지를 놓아라. 그러면 살 것이다.” 하느님께서 잡은 나무를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말씀인줄 알면서도 그 말씀을 따르는 전적인 신뢰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원망하는 투로 “아니 겨우 잡은 이 나무를 놓으라는 말씀입니까?,
이것을 놓으면 낭떠러지기에 떨어져 죽을 텐데, 이것을 놓으라는 말씀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온 힘을 다해 결사적으로 그 나무 가지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날이 밝아져 밑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발 밑이 바로 평탄한 땅바닥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전히 탈진한 그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 복음에서 사도 베드로,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능력,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모두 주님 앞에 서기에 부당한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 주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모든 신앙인은 피정이나, 기도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이나 능력을 체험했을 때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이제까지 정말 잘못 살았습니다. 주님께 죄만 지은 큰 죄인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교님이나, 사제나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생각에 내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한 그는 “이제 나는 죽었다. 큰 일 났구나,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즉 큰 죄인인데 라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주십시오,”라 응답합니다.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 따라 그물을 쳐 만은 고기를 잡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팔삭둥이라 하시며 “나는 박해자로서 사도라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고백하지만 부르심에 응답하여 대 사도가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주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에 응답하기 위해서 주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주님 말씀을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부였습니다.
그 게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고기 잡는 일에 둘째로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고기잡이에는 능통한 어부였습니다.
밤새워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때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때이지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순종하십니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마저도 포기하는 겸손과 순종의 응답이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예수님의 뜻에 전적으로 신뢰하는 응답이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겸손과 순종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큰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말에 전적으로 신뢰하는 베드로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교회의 최고의 목자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도록 부르실 때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써 주십시오.”라고 응답하십니까?
“선생님 말씀을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치겠습니다.”라고 순종하십니까?
팔삭둥이처럼 부족하지만 봉사자로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라고 순종하십니까?
아니면 ‘저는 할 일이 많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 답하므로
나무 가지를 잡고 불순종으로 죽어 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지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기를 청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일꾼으로 부르시며 “깊은데 가서 그물을 치라”고 명하시는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이러한 부르심에 “제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저를 써 주십시오.” 라고 응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깊은 데로 가 그물을 치는 행동”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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