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수 있는 귀
왕이 한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신하 두 사람이 죄인을 감옥으로 호송했습니다.
절망감에 빠진 죄수는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못된 왕아! 지옥 불구덩이에 빠져 평생 허우적거려라!" 이때 한 신하가 그의 말을 막았습니다.
"이보시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하지만 죄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무슨 말인들 못하겠소!"
신하들이 돌아오자 왕이 묻습니다. "그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던가?"
그때 죄수의 말을 가로막던 착한 심성의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예. 게다가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폐하를 용서해 달라고 신께 기도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 죄수를 살려 주라는 명령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다른 신하가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 아닙니다. 그 죄수는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폐하를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왕은 오히려 그 신하를 나무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한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저 사람의 말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그 신하는 다시금 힘주어서 말했지요.
"폐하, 어째서 진실을 마다하고 거짓말이 마음에 든다 하시는 겁니까?"
왕이 말합니다.
"저 사람은 비록 거짓일지라도 좋은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네 말에는 악의가 있구나.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분란을 일으키는 진실보다 나은 법이니라."
그리고 왕은 결국 죄수의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를 치유해 주시는 내용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귀먹은 반벙어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도 잘 깨닫지 못하니 듣는다고 말할 수 없고,
우리가 믿는바 복음을 바로 전할 수 없다면 벙어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말하는 자세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즉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사랑의 마음을 지녔던 왕은 사랑으로 말하는 신하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의 마음으로 들을 때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고, 사랑을 실천하고 난 다음 그것을 전할 때는 바로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들은 바를 바로 깨닫고, 깨달은 바를 남에게 잘 전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동영상 > 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2/17 연중 제6주일(다) (0) | 2019.02.16 |
|---|---|
| [스크랩] 2/16 연중 제5주간 토요일 (0) | 2019.02.15 |
| [스크랩] 2/14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0) | 2019.02.13 |
| [스크랩] 2/13 연중 제5주간 수요일 (0) | 2019.02.12 |
| [스크랩] 2/12 연중 제5주간 화요일 (0) | 2019.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