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에서의 하룻밤
이 득 형
2011년 12월 1일
생전 처음으로 쓸쓸하고 조용한 절간 방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바깥공기가 쌀쌀한 초겨울 밤, 인적(人跡)이 없는 적막한 산속의 김포용문사(龍門寺)객실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구원과 부처님의 자비, 그리고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적만을 바라는 실 날 같은 염원(念願) 한 가닥을 가슴에 안고 병마에 시달리는 막내아들과 함께 山寺에서의 그 첫 밤을 맞이하였다.
흉선암 4기!
너무도 충격적이고 가혹한 선고였다. 지금의 상황에선 제발 ‘4기’라는 말이 ‘말기(末期)’라는 뜻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욕심과 또 산속의 맑은 공기가 좋은 치료방법이라는 담당의사의 말을 하늘같이 믿고 싶은 마음으로 여기에 찾아온 것이다.
“하느님! 저의 죄가 너무나 큽니다. 경망스럽게도 가끔 무신론(無神論)을 씨부렁대고 신불(神佛)에 대해선 줄곧 부인(否認)하며 홀로 초연한 척 했던 제가 너무도 경솔하고 무례했습니다. 8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혼자 잘난 척 부끄러운 노망(老妄)을 부렸습니다. 아마도 그 죄가 이렇게도 컸나봅니다. 제가 저지른 죗값으로 그 무거운 형틀의 칼을 이제 와서 자식 목에 씌워준 격이 되었으니 참으로 미욱한 이 아비의 천박함이 이를 데 없습니다. 서울대학미대를 나왔다는 간판하나를 내걸고 시작하던 미술학원이 번번이 실패한 이후 그로 인한 갖가지 요인의 스트레스가 계속 쌓인 것이 발병의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초기증상이 있었을 때부터 父母에게는 차마 알리기조차 어렵도록 고루(孤陋)하고 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폐쇄(閉鎖)적인 완고(頑固)한 가족환경을 만들고 있었던 내 잘못 때문에 자식의 병을 더욱 깊게 만들었던 것이니 이 엄청난 저의 허물을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고통이 스트레스와 암의 원인이라는 상식을 알면서도 자식을 만날 때마다 ’왜 담배를 못 끊느냐? 끊었다가도 作心三日이 되니 왜 그렇게 의지가 약하냐?’라며 위로의 말이 아닌 꾸중만 했던 제 잘못이 결국 이런 지경까지 몰고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집에 남겨둔 채 오늘부터 이 절간에서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이 외롭게 혼자 지내게 된 막내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 한편 한없이 마음 착한 우리 막내며느리와 사랑하는 두 손자들은 집안의 기둥이라고 할 남편과 아빠를 이 쓸쓸한 절간으로 보내놓고 지금 얼마나 걱정을 하며 난감해하고 있을까?
이런 저런 착잡한 생각과 만감의 회포에 사로잡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책을 펼쳤지만 글자가 제대로 눈에 잡히지 않았다.
문밖으로 나가서 캄캄한 밤하늘을 쳐다보고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별 몇 개를 세어보며 윤동주의 ‘서시’ 몇 구절을 외워 보았다. 그런데 소매 속으로 스며드는 추위에 목을 움츠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와 책장을 들추었건만 여전히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아픈 옆구리를 한 손으로 누르며 힘없이 앉아있던 아들은 슬그머니 등 돌려 옆으로 누워 있었다. 끊이지 않는 통증으로 인해 쉽사리 잠들지 않았을 아들이건만 원망 한 마디 없이 잘도 참으며 못난 아비를 위해 오히려 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항암주사를 맞다보면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는데........’ 이미 아들의 양쪽 볼은 움푹 파여 짙어진 병색과 파리하게 초췌해진 얼굴이 마치 유령처럼 보여 너무도 가엽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순간 가슴으로 치미는 슬픔과 죄책감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아픔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지었구나. 내가 좀 더 일찍부터 너를 많이 사랑해 주었더라면....... 내가 좀 더 자애롭고 포근한 미소로 항상 너를 대해 주었더라면....... 내가 네 어려운 처지와 고통을 한번이라도 역지사지로 바꿔 생각해주었더라면....... 이런 것들 중 한 가지도 실천해보지 못하고 언제나 너의 나약한 처신만 꾸중했던 내가 정말 나쁜 아버지였구나. 이 세상에서 나처럼 얼음같이 차갑고, 이기적인 부모가 또 있을까? 왜 나는 그토록 매정하고 자식사랑에도 인색하기만 했던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지만 만약에 불행하게도 나의 이러한 큰 잘못으로 너에게 씌워진 죗값 때문에 나보다 네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그때 나는 너를 가슴에 묻고 어떻게 산단 말이냐?’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는 불길한 악몽에 억눌려 나는 그만 땅을 치며 통곡하고만 싶구나.’
외출했다가 밤늦게야 돌아온 주지여승과의 대화에서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듣고 다소 안심이 되었다. 주지스님도 유방암에 걸렸다가 이겨내어 회복중이라면서 자기경험에 맞추어 환자에게 맞는 식사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나는 다만 내 아들을 한 가족처럼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하고서야 잠시 잠이 들었다.
이튿날아침, 창밖이 훤히 밝아왔지만 산골의 겨울해돋이는 마냥 늦어지는 것 같다. 절에서 주는 아들의 아침식사시각이 여덟시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 전에 먼저 절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땅거미가 아직 어스름히 남았을 때 급히 길을 나섰다.
산 아래의 찻길까지 내려와 한참 걷다가 뒤돌아보니 나를 배웅해주려고 따라오던 아들이 그때까지도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 보여 나는 어서 그만 올라가라고 손을 흔들어주는 순간 밤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때 문득 ‘나의 이런 눈물이 아직은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아비로서의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몇 가지를 떠올려보았다.
“아들아, 오래간만에 아버지하고 같이 한 방에서 자고난 지금의 네 심정은 어떠니? 아무쪼록 병을 이기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참고 또 참아다오. 이 12월이 곧 지나가고 새해 봄이 오면 용문사주위도 온통 싱그러운 신록으로 덮일 것이니 그 숲속의 초록빛 향기와 함께 너의 건강도 싱싱하게 회복되어 새 힘이 솟아날 것이 아니겠니? 부디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해라. 역경을 이겨내야 삶의 기쁨도 있는 거란다. 그리고 너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고 싶구나.
그 첫째는 염치없는 말이지만 이 아버지가 너에게 섭섭하게 했던 과거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려다오. 이렇게 너의 용서를 바라는 것이 지금 아버지의 솔직한 심정이다.
둘째, 지금 네가 나를 배웅해준 것처럼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나는 너의 그 정성어린 배웅을 꼭 받으면서 떠나고 싶구나. 그렇게 해주면 나는 이승에서의 죄를 다 면죄 받고 가는 것이 되어 하늘나라에서는 편안히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구나.
셋째, 너는 빨리 건강을 회복한 후에 너의 어머니께 극진히 효도하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서 너의 어머니처럼 모성애가 강하고 자식들에 대한 정성이 지극한 사람은 또 없을 것이라고 나는 항상 감탄하고 고맙게 생각해왔다. 더구나 요즈음 병약해진 너에 대한 애틋한 심정과 정성어린 수발은 눈물 없이는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성자(聖者)의 모습 그대로이니 넌 그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천사와 같이 착한 너의 아내에 대해서도 언제나 감사해야한다. 너와 두 아들을 위해 밤늦도록 외근하며 희생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고맙고, 위대하냐? 얼마나 심신이 고달프겠냐? 세상인심이 날로 각박해가고 남자여자 누구나 자기 위주로만 살려고 하는 요즈음인데 참으로 보기 드믄 현모양처의 본보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또, 너의 형들과 형수들 그리고 두 누나와 매형들이 너의 건강회복을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과 너를 알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너를 위해 매일 정성어린 기도를 해주시는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기필코 너는 건강을 되찾아야한다. 그러기위해 담당의사 말대로 '물을 많이 마시고 큰 숨 쉬기'를 자주할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한편, 빈손으로 혼자 피난 나와 객지에서 온갖 고초를 이겨내며 고향의 부모와 동생들을 생각라고 평생을 술, 담배 모르며 검소하게 지내온 아버지의 심정도 생각해보렴.”
새벽의 시골길을 총총걸음으로 20여분동안 걸어 덩그러니 서있는 버스정류장푯말 옆에 한참 서 있다가 고양시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어슴푸레한 아침 풍경을 내다보며 어제 하룻밤 노심초사로 지샌 일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몸과 마음이 약해진 아들을 다소나마 위로해 준 느낌도 들었고, 山寺에서의 하룻밤이 영원히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기도 한 느낌도 들었다.
다시 한 번 아들의 쾌유와 행복을 하느님께 애원하고 기도하면서.......
*아버지가 최근에 작곡한 노래 한 곡을 너의 굳은 결심과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뒤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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