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 요셉

[스크랩] 25년 만의 효도

이웅수 2013. 1. 22. 16:49

소제: 회혼(결혼60주년)을 맞은 친정 부모님을 위한 특별이벤트선물

 

 

“엄마, 아버지, 다음 주 목요일이 4월 5일 식목일이잖아요? 그날 아무와 약속하지 마세요. 애비가 9시 반쯤 차로 모시러 갈 거예요. 꼭이요!”

“도대체 무엇 하려고 아코디언자원봉사 나갈 때 복장으로 기다리라는 거냐?”

“아무튼 그날 하루는 우리랑 같이 보내시는 거니까 염려마시고, 시간만 내주시면 돼요.”

고막손상으로 2급 장애판정을 받으신 친정아버지께는 큰소리로 반복하여 단단히 약속을 받아냈다.

예약한 모든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루전날인 수요일저녁에도 또 전화를 드려 내일아침에 모시러갈 테니 베레모에 나비넥타이, 양복, 양말, 구두 등 검정세트로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라 부탁했다.

 

25년 전 어느 날,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는 학교선생님들을 집으로 초대했다면서 ‘바쁘니 빨리 와서 도와 달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전교직원수가 100분이 넘는데 그분들의 저녁식사준비를 어떻게 집에서 한담? 간편하게 식당으로 모시고 가지.’ 속으로 꿍얼거리며 부지런히 연희동친정으로 갔다. 장을 보고, 다듬어 온종일 바쁘게 요리하는 동안 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오인이 엄마와 행상이 엄마도 같이 도와주셨다.

“수고 많이 하신 대가로 제가 자장면을 쏠게요.”

김치반찬을 더 얹어 맛있게 중식을 마친 후 잠시 커피타임을 가졌을 때 엄마의 한숨 섞인 말씀 한 마디가 가슴에 ‘쿡’ 깊이 박혔다.

“휴! 내 평생에 면사포 한번 써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네.”

혼잣말처럼 지나가는, 약간의 불평이나 한이 섞인 속내를 털어놓으셨다. 어쩌면 맏딸인 내가 들어보라는 속셈으로 오랫동안 삭이며 숨겨왔을지도 모를 그 말씀을....... 엄마의 푸념 같은 그 한마디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흐려지기보다는 더욱 더 기억 속에서 점점 큰 자리를 차지하며 짙어져 갔다.

 

하지만 누구하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월급쟁이아내로 절약에 절약을 해야 하는 내 생활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신사동2층 집으로 늘려 이사하는 바람에 은행융자 갚느라 지금은 여유가 없어. 시누이, 시동생결혼비용으로 생활비지출이 너무 많아 올해도 어쩔 수가 없네. 삼남매가 중,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니 교육비과지출 때문에 도저히.......’ 이런저런 이유로 친정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매년 그냥 넘겨야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한편으로는 ‘결혼50주년을 맞으실 때는 꼭 해드려야지.’ 혼자 결심했다.

하지만 50살이 되던 2002년의 내 건강상태는 생애최악이었다. 1997년부터 시작된 IMF경제위기 때 친정사촌동생으로부터 1억이 넘는 부동산을 사기 맞아 그 충격으로 자궁절제수술을 받아야했고, 25년 동안 근무했던 남편은 갑자기 조기명예 퇴직하여 일순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다가 1990년 초부터 시작된 어깨통증으로 눈만 뜨면 유명하다는 정형외과와 한방을 찾아다니며 물리치료를 받거나 침을 맞아야했고, 밤이면 얼음찜질하느라 잠을 설쳐 몸무게가 10여 kg이나 빠지는 등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혼자 다짐하고, 약속한 계획을 이루어드리지 못한 채 부모님의 결혼50주년기념일을 우울하게 보낸 후, ‘결혼60주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기념이벤트로 웨딩드레스를 입혀드려야지.’ 재 다짐했다.

 

그 후 친정 쪽으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혹시 아버지나 엄마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 어쩌지?’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0주년으로 미룬 나 자신이 미워졌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50주년 때 해드릴 걸. 앞으로 연세가 많아지면서 두 분 중 누구 한 분이라도 안 계시면 해드릴 수 없는 건데........’ 심장수술 받은 아버지께서 하루에 한번만 면회되는 중환자특실에 계셨을 때와 엄마가 자궁암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셨을 때, 회복실에서 나와 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셨을 때, 아직 적절한 항암제도 없는데다가 수술치료도 늦은 막내 동생 재광이가 흉선암 선고를 받았을 때 특히 신경이 써졌고, 후회 막심했다.

 

1.4후퇴 시 고향인 이북의 개성에서 홀로 피난 나오신 아버지는 검단초등학교에서 근무하셨는데 숙직을 도맡으며 숙직방에서 거의 2년 동안 외롭게 기거하셨다고 한다. 제자인 성남이모의 얌전한 태도에 관심을 두어 혼기에 찬 둘째언니가 있음을 아시고, 가정방문을 기회로 사랑방에서 창호지문을 뚫고 부엌에서 왔다 갔다 하는 엄마의 처녀모습을 훔쳐보신 아버지는 직원을 중매쟁이로 세워 결혼에 골인하셨다고.

결혼식 날 아침, 그동안 식사를 부탁해오던 소사아저씨 댁에서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가현산 줄기의 언덕아래에 있는 외가로 혼자 쓸쓸히 걸어가셨는데 그날 마당가에 활짝 핀 연분홍진달래가 제일 먼저 반겨주었단다. 곧 누군가 입혀주는 사모관대를 걸치고, 대청마루에 차려진 초례상을 사이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겨우 마련하였을 한복차림의 엄마와 마주서셨다고 한다. 식순에 따라 큰절을 주고받은 후 수모와 시반이 전해주는 표주박의 술을 마시는 시늉으로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도 못한 채 번개처럼 순식간에 두 분의 혼례식이 끝났다고. 하지만 그때는 누구의 탓도, 원망도,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일선에서는 포성이 끊이지 않은 전쟁 중이었고, 외삼촌도 군대에 가있어 집에는 여자들만 남아있는 척박한 상황이었다고. 거기에 아버지 또한 혈혈단신으로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의 총각선생이었으므로 마당에 멍석 깔고, 소반의 냉수 한 그릇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작수성례보다는 몇 배 호화로운 결혼식이었다며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잠자리만 옮긴 결혼식이었지만 농사꾼의 딸로 자라면서 농사짓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 지겨웠기 때문에 월급쟁이의 아내가 되었다는 생각만으로 매우 기쁘셨다고 한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한 달에 두 번 지급되는 밀가루나 보리쌀을 받으러 인천까지 나가야했고,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정도로 배를 곯아야만 했다고. 하기야 맏딸인 나도 어렸을 적의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아침밥을 못 먹은 채 5리쯤 떨어진 외가로 걸어가서 엄마를 졸라 아침에 먹다 남은 차디찬 꽁보리밥을 김치와 단무지를 반찬으로 겨우 얻어먹는 등 칡뿌리를 씹어 배고픔을 잊어야했던 기억밖에 없다.

 

그 후, 두 분은 4남 2여를 키우며 정말로 열심히, 성실근면하게 살아오시면서 집 없는 설움을 받으며 이사도 여러 번.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이웃의 호감과 존경을 받으셨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는커녕 사기와 도둑을 당하면서도 없는 살림에 남을 도와주는 등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60년을 지내오셨다. 엄마의 착한 성품은 백병원에서의 오랜 자원봉사활동과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어 추위에 떨고 있는 아무나에게 벗어주게 했고, 요즘에는 새벽마다 성경책을 들고 성모마리아 앞에서 가족과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 정년퇴직이후 여든 다섯 되신 지금도 아버지는 20kg이나 되는 아코디언을 메고 요양원, 교도소, 병원, 청소년을 위한 센터 등으로 다니시며 자원봉사활동을 바쁘게 하고 계신다. 하루 세끼 끼니마다 건강에 좋다는 토마토와 과일을 챙기고, 믹서로 콩을 갈아주는 엄마의 지극정성은 젊었을 때부터 소화기관의 이상으로 고생해 오시고, 심장과 척추의 큰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를 건강하게 만드셨다. 한 나무의 가지가 다른 나무의 가지와 뒤엉켜 마치 하나처럼 이어진 것을 연리지라 하는데 아버지와 엄마의 연리지는 아버지를 위한 엄마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연리지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친정 부모님의 결혼60주년기념일을 기다리면서 마음 졸이며 살아온 지난10년을 뒤돌아보니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 올해로 남편과 나는 결혼37주년을 맞아 친손자, 친손녀, 외손자, 외손녀를 둔 어엿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고, 친정 부모님께는 증손자와 증손녀를 안겨드리며 같이 늙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남편과 단둘이 의논하여 계획세운-친정 부모님의 결혼60주년기념이벤트를 벌이고자 하는 2012년 4월 5일 목요일은 새벽부터 잠이 깨어 마음이 설렜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분께서 과연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친정의 좋지 않은 현재상황이 두려웠다. 막내남동생은 흉선암 말기로 항암제6차까지 다 맞았지만 별 차도가 없는 상황이고, 두 남동생은 조카들의 대학교육비지출 등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관심쓰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맏아들인 남동생은 선교사로서 가족과 호주에서 살고 있고, 여동생은 어린 외손녀 돌보느라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나이 60으로 결혼60주년을 맞은 올해에 해드리지 못하면 눈을 감은 후에도 두고두고 후회하며 가슴 아파할 것 같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꼭 해드려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결국 친정 부모님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새벽6시 반, 서울 진관내동 은평뉴타운에 사는 큰아들 집으로 친손자인 민규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면서 간절히 부탁했다.

“양우아파트에 들러 아버지, 엄마를 잘 모시고 조심해서 오세요!”

 

“아버지, 엄마! 오늘 식목일이 결혼60주년기념일이죠? 축하해요! 오늘 하루는 모든 시름 다 내려놓으시고, 제가 시키는 대로 따라주셔야 해요. 아셨죠?”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데 그래?”

계획대로 시간에 맞춰 도착한 남편의 차 뒷자리에 친정 부모님을 모셨고, 난 조수석에 앉아 노래 자원봉사하기 위해 주2회, 4년째 출근하는 메디웰병원으로 갔다. 늘 하던 대로 남여알코올중독, 지능저하환자들 3, 40여명 앞에서 미리 준비해간 노래방기계번호를 누르며 누구나 쉽게 같이 부를 수 있는 유행가요 서 너 가지를 불렀다. 1절은 내가 부르고, 2절은 환자들의 입에 마이크를 대주어 함께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20여 분 지나 친정 부모님의 결혼60주년기념이벤트에 대해 설명하고, 아버지부터 소개했다.

“메디웰병원이 풍무동에 있었을 때 아버지의 아코디언연주를 들으신 분이 계실 거예요. 오늘은 여든 다섯의 친정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일흔 아홉 되신 친정어머니도 같이 모셨습니다.”

“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환자들의 박수소리가 크게 나왔다.

“고맙습니다. 두 분을 위한 특별이벤트첫째코스가 바로 여기입니다. 아버지의 흘러간 옛 노래 세 곡 아코디언연주에 이어 어머니의 18번인 ‘섬마을 선생님’, 그리고 제 남편의 ‘고장 난 벽시계’ 노래를 계속해서 들으시겠습니다. 자,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박수!”

친정아버지의 아코디언연주와 엄마와 남편의 노래봉사가 추가된 메디웰병원에서의 첫 번째 이벤트는 대성공으로 미리 사회복지사와 영양사에게 양해를 구한 덕분에 병원식당에서 식사도 하였는데 우연히 만난 이사장님과 인사 나누는 영광까지 가질 수 있었다.

 

12시 50분쯤, 친정 부모님을 모신 우리부부는 김포 시민회관 앞에 위치한 리체 웨딩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눈치 빠른 엄마는 직감적으로 알아채신 것 같았지만 오늘의 일정은 물론 웨딩숍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전혀 모르시던 친정아버지는 당황해하며 극구 말리셨다. 25년 전부터 생각해온 일이라면서 연희동 살았을 때의 일을 말씀드리니 그때서야 수긍하시며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하셨다.

“그래. 엄마는 완정이모가 결혼40주년기념으로 드레스 입고, 면사포 쓰고, 사진관에서 사진 찍은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었어. 여보, 오늘로서 당신도 그 소원 풀게 되었으니 이젠 완정처제가 부럽지 않지?”

“네. 그래요!”

화장대 앞에서 아가씨의 빠른 손놀림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고운 신부로 변신하는 친정엄마의 모습은 참으로 예뻤다. 여러 자식들 낳아 키우느라 고생만 하신 흔적으로 수도 셀 수 없이 깊게 패인 잔주름만 없다면 20대의 아리따운 처녀라 해도 될 것 같았다.

“엄마, 참 예쁘네. 얼굴이 작고 오목조목해서 천성 여자상이야.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 보니까 정말로 예쁜 걸?”

“정말로 나 예뻐?”

“음!”

나는 엄마의 변해가는 얼굴모습을 처음부터 사진기에 부지런히 담았다.

그때 룸에 계신 아버지와 턱시도를 들고 있는 웨딩숍여직원이 말싸움을 하고 계셨다.

“이 비싼 옷을 빌려 입는데 돈 많이 들걸? 난 그냥 내 양복 입고 찍을래. 괜찮아.”

“아니에요. 이 턱시도를 입으셔야 제 모양이 나고, 어머님과도 잘 어울리십니다. 따님께서 다 예약해두셨어요.”

“아버지, 사진 촬영하는 값에 다 포함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갈아입으세요.”

할 수 없이 좋은 거짓말로 겨우 설득시켰다.

“아휴! 이 검정양복도 괜찮은데......... 알았어. 고맙다. 그럼 어떤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지 봐주겠니?”

턱시도 두 개를 번갈아 입으시고, 거울을 보시더니 기분이 무척 좋으신지 입이 두 귀에 걸려 매우 기뻐하셨다.

“내가 그동안 턱시도 입은 신랑들을 앞에 세워놓고, 주례를 수도 셀 수 없이 많이 서보았지만 내 생애 턱시도를 입어볼 줄 전혀 생각 못했다. 오래 살다보니 턱시도 입고, 화장하는 행복도 맞아보네!”

연신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화장을 마친 엄마를 뒤에서 껴안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말씀하셨다.

“아이구, 우리 마누라 참으로 곱고 예쁘기도 하지. 여보, 우리가 엉터리로 결혼한 지 60년이 된 오늘에서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구먼. 기분이 최고로 좋지? 우리 같이 오래 산 보람이 있구려!”

“그렇죠. 두 분 중 누구하나라도 안계시면 이렇게 화장하고, 웨딩 촬영하실 수 없죠.”

오늘 하루 종일 운전기사와 아코디언짐꾼노릇을 자칭한 남편이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처음엔 뭘 하느냐며 큰소리로 손사래 치시던 아버지께서 엄마의 치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시며 셔터를 누르라고 독촉하셨다.

“아니 그런데 엄마는 왜 이리 늦는 거냐? 빨리 나오지 않고.”

성격이 급하신 아버지는 계속 재촉하셨다.

그때 커튼이 열리면서 흰 드레스차림의 엄마가 나타나셨다. 두 손을 가지런히 허리 앞에 모은 엄마의 모습은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와! 우리 마누라 정말로 새색시 같네. 날씬하고, 예쁘고. 또 한 번 시집가도 되겠는 걸? 누가 저 모습을 80다된 할머니라고 보겠어? 와! 정말로 우리 마누라 최고로 예쁘다!”

순간 활짝 웃으시는 친정아버지와 엄마의 백반불짜리 미소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계속되기를 두 손 모아 진심으로 간절히 빌었다.

사진촬영실로 이동하시는 아버지와 엄마는 두 손을 꼭 잡으셨다. 비록 정식예식장은 아니지만 엄마는 다소곳한 신부의 모습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천천히 얌전하게 발걸음을 떼셨다. ‘친정상황이 요즘처럼 나쁘지 않다면 결혼식장에서 정식으로 일가친척친구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려드리고 싶었는데.......’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니지. 오늘처럼 좋은 날에 내가 울면 안 되지.’ 아무도 모르게 재빨리 안경 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웨딩숍전속사진사 옆에서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자, 지금부터 사진촬영을 시작하시겠습니다. 두 어르신, 활짝 웃어보세요. 김치~~~"

“아버님은 좀 전, 혼자 찍으실 때는 자연스럽게 잘 웃으시더니 지금은?”

“그래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더 활짝 입을 크게 벌리고. 됐습니다. 자, 잠시 쉬세요. 의자를 치우고요. 이번에는 두 분의 서신 모습을 찍겠습니다.”

“아버지,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포즈를........ 엄마, 예쁜 미소 부탁해요!”

사진기사 머리 위에서 열심히 셔터를 누른 나는 30여 분간의 웨딩사진촬영이 끝나자 남편과 같이 부모님 옆에 서서 기념사진도 남겼다.

“이 디카로 찍어주세요!”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친정 부모님과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사진액자에 끼우기 위한 현상할 사진을 한 컷 골랐다. 액자크기를 정하는데 아버지는 제발 작은 것으로 하라며 우기셨고, 엄마는 뒤에서 한숨을 쉬시며 고마움을 표하셨다.

“너 결혼할 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우리에게 큰 선물로 기쁨을 안겨주다니! 우리큰사위가 한없이 고맙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 정말로 고마워. 오늘 하루 종일 수고 많이 했어.”

귀가 어두운 아버지께는 작은 100,000원짜리로 정했다고 하면서 직원과는 250,000원짜리 대형액자로 계약했다.

 

저녁6시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매월 첫째, 셋째 목요일 저녁7시부터 노래봉사 하는 김포우리병원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병원관계직원들이 언제나처럼 대형현수막을 쳐놓고, 의자를 돌려놓고, 노래방기계를 설치하고 있었다. 방송을 들은 입원환자들과 가족들, 간병인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예전처럼 환자들로부터 노래신청곡을 받는 동안 누구나 쉽게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 너 댓 곡을 합창하다가 2부에서는 친정 부모님의 결혼60주년기념일에 대해 설명한 뒤 아버지의 아코디언연주, 엄마와 남편의 노래봉사, 끝으로 둘째남동생과 올케의 ‘둘이 하나 되어’라는 감미로운 노래로 매듭지을 계획을 세웠다. 틈틈이 환자들의 신청곡을 틀어주면서........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계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곧장 2부 공연으로 들어갔다. 친정아버지의 흘러간 노래아코디언연주가 40분 정도 계속되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라!’ 노래를 따라 불렀다.

“혹시 가사를 모르시면 ‘라라라’로 하셔도 됩니다.”

어느 젊은 여자환자는 ‘홍도야 우지마라’ 노래의 1, 2절을 끝까지 앞에 나와 구성지게 잘 불러 담당계장님의 부탁대로 김포우리병원에서 준비한 선물을 대신 전달했다.

끝맺음하기 위해 둘째남동생부부를 앞으로 나오라며 간단히 마무리인사를 했다.

“제 둘째남동생부부가 결혼60주년기념일을 맞으신 부모님께 노래선물을 하겠다며 ‘둘이 하나 되어’란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종교음악이지만 노래 부르는 의미를 따스하게 이해해주시고, 감동적으로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여러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둘째남동생의 기타연주에 맞춰 부른 올케와의 2중창은 참으로 아름다운 곡으로 가슴에 뭔가 아늑함을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자리뜨기가 못내 아쉬운지 끝으로 환자들의 건강회복에 도움이 되라며 재미있는 일화 세 가지를 더 들려주어 '우리도 가수다.'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관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

 

 

오후에서야 알게 되어 부랴부랴 김포우리병원에서 모인 동생부부들과 함께 저녁식사한 후 우리 집으로 이동,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하노래를 불러드렸다.

셋째 남동생부부가 선물한 커플 티를 입고 기뻐하시는 친정 부모님은 ‘온종일 사진 찍고, 또 찍어?’ 하시면서도 계속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엄마는 기분 좋다며 아버지 볼에 뽀뽀까지 해주셨다.

둘째 남동생부부는 예쁜 철쭉꽃화분과 케이크를 준비해왔다.

 

첫 번째 노래자원봉사로 시작하여 25년 전부터 계획한 웨딩사진촬영선물을 피크로 두 번째 노래자원봉사로 마무리 지은 친정 부모님의 결혼60주년기념특별이벤트를 무사히 성공리에 잘 마침으로써 두 분께 온종일 웃음선물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열 아홉 살 때 친정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시집가느라 가마도 못 타신 엄마와, 이북고향에 부모형제를 두고 홀로 피난 오신 후 스물 다섯 살에 검단국민학교 숙직방에서 처가로 숙소를 옮김으로 명색으로만 장가드신 아버지께 큰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그 후, 웨딩숍에서 찾아온 큰 액자와 내가 디카로 찍은 사진을 현상하여 만든 앨범을 자주 들여다보시며 기뻐하실 때마다 ‘해드리길 참 잘했다!’ 흐뭇했다.

 

막내남동생이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는다면 결혼환갑주년이 될 2013년 식목일에는 예식장을 빌려 직계가족들은 물론 부모님의 친지, 친구, 아는 모든 분들을 모셔놓고, 자식들 중 주례사와 사회자가 되어 정식결혼식을 올려드림으로 감동적이며 뜻 깊은 특별이벤트선물을 해드리고 싶다. 그때는 호주의 남동생부부도 참석하여 오랜만에 4남2여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멋지고 큰 행사가 될 것 같아 복받치는 감격에 벌써부터 목울대가 뜨거워짐을 느낀다.

 

*사진방에 관련사진이 올려져 있습니다.

출처 : 해피인이계옥
글쓴이 : 이계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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