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5/12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이웅수 2018. 5. 12. 00:00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을 받던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시 생활이 그렇게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생활하고 싶은 충동이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 그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서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공기 맑고, 사람들의 후한 인심이 너무나 좋았고, 그래서 시골에 잘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시골의 생활은 자신에게 너무나 낯선 것이었습니다.
화단을 가꾸는 것도, 밭농사를 짓는 것도, 그 밖의 모든 일들이 낯설고 그래서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과 함께 키우던 송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외양간에 넣으려고 했지만 도대체 이 송아지가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앞에서 끌고 그의 아들은 뒤에서 힘차게 밀었습니다. 그러나 도통 송아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그 동네의 할머니의 한 분이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봐!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송아지가 움직이지 않는 거야. 송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그러더니만 이 할머니는 자신의 손가락을 송아지 입에 물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송아지는 그 손가락을 빨면서 이 할머니가 유도하는 대로 천천히 외양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할머니는 시골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그 송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 송아지는 바로 그 순간에 어미 소의 젖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움직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송아지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송아지가 움직여주길 바라는 사람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송아지의 입장에서 서서 송아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는지…….
모든 성서에 있는 황금률에서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남이 나에게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입니다.
늘 상대의 입장에 생각하는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예수님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왜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믿는 우리들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모든 것을 당의 이름으로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청하도록 합시다.
이 현재를 살면서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나’만을 바라보지 말고, ‘남’ 좀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그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며,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는 것입니다.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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