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스크랩] 9/28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이웅수 2018. 9. 27. 22:07

          예수님을 아는 자의 삶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베드로의 이 대답은 예수님께 큰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으신 자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강조하셨듯이 예를 들어 한 형제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를 사랑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를 판단하고 미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과 사랑의 눈으로 볼 때 우리 모두가 소중하고, 존경해야하고,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우선해야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그분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이기에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그 외의 것은 더움으로 주리라.”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그리고 형제를 보고, 이웃을 보고, 나를 볼 것입니다.

히틀러 나치스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많은 사람 중에 장사꾼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끌려가며 한다는 소리가 “ 나는 나치스에 항거한 일도 없어요.
그저 저는 이쪽저쪽 다니며 장사한 일 밖에는 없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치스에 저항하다 끌려가던 사람이 한 마디 합니다.
“당신은 한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이같이 험난한 시대에 살면서
‘하느님의 의’를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니 그게 보통 죄인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

여러분 이 세대를 살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면 죽일 죄인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도록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전설입니다. 창세기의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팔려가서 처음에는 고관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이 늠름한 청년 요셉에게 음욕을 품고 요셉을 유혹합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니 좀 즐기자”고 유혹을 했을 때 요셉이 말합니다.

“안됩니다. 하느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러자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치마를 벗어 우상을 덮어씌우고는 이러면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
“저 따위 우상이야 못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다 보고 계십니다.” 하며 유혹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이 믿음이 요셉을 지켜 준 것입니다. 그의 양심이 지켜진 것은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양심을 따라 살고자 할 때 하느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양심을 따라 살고, 하느님의 뜻을 해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우리 반, 구역 공동체에서 본당 공동체에서 봉사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아는 자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곽선희 목사 설교 집 참조)

출처 : 부부영신수련수원 MR
글쓴이 : 시노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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